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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장편문학상 첫 수상작 임영태씨의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시인 최주식 2010. 2. 5. 23:06

중앙장편문학상 첫 수상작 임영태씨의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소설가 임영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 한마디에 다들 포복절도한다. 그러나 상쾌한 웃음만은 아닐 게다. 웃자고 하는 코미디 프로에서조차 취기를 빌려 내뱉어야 자연스러워 보이는 금기의 말이니까. 그 말을 한다는 건, 스스로 1등은커녕 2류, 어쩌면 3류 인생이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니까.

하지만 세상에 1등짜리가 몇이나 될까. 1등이 아닌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기억될 가치조차 없는 걸까. 이제 막 출간된,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임영태(52) 작가의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뿔)은 그런 3류 인생을 기억하는 이야기다.

‘나’는 서울 동교동 주택가 반지하 사무실에 ‘제3의 작가’란 간판을 내걸고 남의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다. 흔히 대필은 ‘작가’란 타이틀을 달고 하는 일 중에서도 가장 하류로 친다. ‘나’는 자서전 대필은 기본이요, 실용서, 농협의 하청을 받아 소고기의 21군데 부위에 대한 설명을 스토리텔링식 에세이로 쓰는 일까지 맡는다. 이름 한 글자 빛 보지 못하는 유령 작가 신세.

일상은 건조하다. 아내와도 사별한지라 밥 먹고 글 쓰고 동네를 거닐고 술 마시고 일어나 해장라면을 끓여먹는 일이 반복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간밤에 포장마차에서 만났다는 장자익이란 인물이 숙취로 뻗은 ‘나’를 찾아온다. 그는 자신의 삶을 소설을 써 ‘나’의 이름으로 발표해달라며 계약금을 안긴다. 그런데 일주일 뒤 장자익의 사망 소식이 날아든다. 받은 돈이 있으니 소설은 써야 할 텐데, 죽은 자의 삶을 알 길은 막막하다.

“누구에 대해 쓰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그를 만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한 사람을 온전히 만나면 거기에 다른 이들도 보인다. 배역이 다를 뿐 모든 사람의 욕망과 상처는 본질적으로 같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무게의 삶을 산다.”

장자익에 대한 소설을 구상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는 작업이 된다. 못난 가장이었다는 자괴감, 아내에 대한 미안함, 한량처럼 사시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 비슷한 감정, 철모를 시절 친구의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데 대한 후회까지. 잔잔히 흐르던 냇물이 비라도 만난 듯, 마음의 찌꺼기들이 떠오른다.

소설에선 꿈과 현실,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모호하다. ‘나’는 일터 주변을 오가며 죽은 사람들을 흔히 본다. 책장을 넘길수록 회상인지, 꿈 속인지, 현실 속의 환상인지 알 수 없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짙어진다. 기억되지 않는 사람은 존재감이 없다. 죽은 자와, 살았어도 존재감이 없는 자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구분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나’가 서울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아내와 시골에서 살던 시절, 자식 대신 길렀던 진돗개 태인이도 이야기의 중요한 줄기다. 비싼 돈 주고 산데다 혈통서까지 동봉돼 있어 굴뚝같이 진돗개라 믿었지만, 누가 봐도 똥개였다. 진돗개라 믿는 주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제 깜냥 이상으로 센 척 하며 살다 어이없게 죽어버렸다. 꿈에서 아내는 태인이에게 속삭인다. “괜찮아, 아무 걱정 하지 마. 진돗개가 아니라도 괜찮아.”

그 속삭임은 태인이를 향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왜 일등이 아닌가’라며 아등바등하다 상처 입은 모든 이들에 대한 어루만짐이다. 펑펑 눈물 흘리게 하진 않지만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참 따뜻한 소설이다. 각진 세상을 둥글게 감싸 안는 문학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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