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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가는 문학 그 불길한 징후

시인 최주식 2010. 2. 5. 23:08

[조우석 칼럼] 무너져가는 문학 그 불길한 징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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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머릿수의 문제가 아닐까? 단순비교 할 순 없겠지만, 왜 뉴욕이 뉴욕입니까? 안목 있는 사람이 그만큼 몰려있거든.”(이상남) “그래서인지 우리는 메인 스트림이 없죠. 견고한 중심부가 형성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게 꼭 영상·전자미디어 발달 탓도 아니고….”(조우석) “문화다양성 부족도 걱정이지요. 일 테면 제가 연출한 다큐영화를 개봉관에서 상영하면, 1000명이나 들겠어요? ‘워낭소리’가 예외일 뿐, 극영화에만 사람·자원이 집중되는 쏠림의 구조지요.”(이호섭)

1일 저녁에 나눈 대화다. 화가 이상남은 20여 년째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고, 다큐 감독 이호섭은 3년 전 제29회 시네마 드 륄 다큐영화제 2등상 등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그날 대화는 결국 메인 스트림 형성 문제로 모아지는데, 그건 전문가그룹 사이의 소통, 그걸 도와줄 매체가 필수다. 이를 통한 한국형 싱크탱크의 등장도 기대하지만, 그건 꿈일까? 현 상황은 메인 스트림의 형성은커녕 소수 전문가그룹의 존립부터 걱정해야 한다. 고급문화의 전통적 종가(宗家) 문학의 경우가 그러하다.

즉 독자층의 양과 질을 탓하기 이전에 자멸의 징후마저 없지 않은데, 이런 비관적 전망은 얼마 전 유종호(75) 전 연세대 교수의 『시와 말과 사회사』를 읽으며 받은 충격 때문이다. 그 책의 지적에 따르면 한 국립대 국문학과의 유명교수 A는 정지용의 명시 ‘향수’에 나오는 ‘서리까마귀’를 갈가마귀로 해석했다. 굴지의 출판사에서 펴낸 시해설서(2004년)에 담긴 해괴한 풀이가 그렇다. 서리까마귀는 가을 서리가 내릴 때 난다고 해서 만든 정지용의 신조어인데, 그걸 현대문학을 전공했다는 A만 몰랐다.

떼 지어 나는 불길한 갈가마귀로 해석하면 ‘향수’의 맛까지 변질되지 않던가? 실수 내지 무지는 한둘이 아니다. 정지용의 다른 시에 나오는 ‘초밤불’을 “결혼 첫날밤을 밝히는 불”로 해석하는 등 억지도 수두룩하다. 유종호 선생의 말대로 “마구 읽기와 ‘소설쓰기’를 일삼아 비감”할 지경이다. 초밤불은 ‘이른 밤 나오는 별’이란 신조어로, 조지훈·박목월·임학수 등이 ‘초밤별’로 변용시켜 사용해온 탓에 익숙해진 어휘다. 더구나 정지용은 김소월·한용운·이상·서정주·백석·임화·김수영·김기림 등과 함께 근대문학의 핵심이 아니던가?

상황이 이렇다면 다른 작가는 어찌 다뤄진다는 말일까? 한 외국인 한국학연구자가 시인 박목월의 작품 ‘임’에 나오는 “기인 한 밤을/ 눈물로 가는 바위”의 ‘가는(磨)’을 ‘가는(行)’으로 영역하는 황당한 해프닝도 심심찮다. 불과 100년 전후의 문자문화 유산이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몇몇 연구자의 무지함이라기보다 문학 내부의 연구 동력(動力)이 상당 부분 소진됐고, 이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황폐화 현상이다. 여기에 다분히 한국적 상황이 가세한다.

입시용 수험서·시해설서가 이상 범람하고, 수능고사에서는 그걸 토대로 한 ‘꽈배기 문제’가 수험생을 괴롭힌다. 지난해 말 한 시인이 “내 시 작품이 나온 대입문제를 풀어 봤는데 나도 틀렸다”고 털어놓은 걸 기억하시는지? 담론으로써 문학의 죽음이 거론된 게 얼마 전인데, A교수와 외국인 한국학 연구자의 잇단 실수는 가히 ‘문학 스캔들’감이다. 이것이야말로 지난주 언급했던 디지털 전자사막화 현상인데, 대한민국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씽씽 돌아간다. 그래서 더욱 엽기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