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내 안에 / 유승우
시간이 내 안에 들어와 있음을 알았습니다.
내 안에 들어와 그냥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귀중한 것들을 다 가지고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요즘은 내 안에서 한 칠십년 쯤 자라서 그런지
홍수처럼 불어나 제법 소리치며 흘러갑니다.
내 가슴속 마음의 벽에 흑백사진처럼 걸려 있던
어머니의 희미한 모습도 쓸어가 버리고,
예식장에서 아내를 바라보던 내 젊은 눈빛도
산사태처럼 움푹 파인 눈 가의 주름만 남기고
다 쓸어가 버렸습니다. 내 얼굴엔, 장마 뒤에
돋아나는 버섯처럼 검버섯이 쫙 돋았습니다.
그래도 내 어렸을 때의 까불던 모습은
둘째 손자 동률에게로 몽땅 흘러들어가서
맑고 깨끗한 냇물로 출렁이고 있습니다.
유승우 시인
196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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