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세탁소 / 이상갑
아버지는 고성읍에서 유명한 목수였다
타당 타당, 못대가리를 잘도 장단 맞춰 때려가며
십남매 먹여 살리던 망치소리
종일 일 하시고 집에 돌아오시면
올망졸망 엉겨 붙는 자식들 떼어놓고
스피커에서 쟁쟁 울려오는 소리 따라
손수 일을 하시던 가야극장으로 공짜 영화 보러 가셨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거리에 붙어 나불대는 포스터들
미워도 다시 한번, 동백아가씨, 떠날 때는 말없이…
중학생 까까머리 나는 집 나서는 아버지가 궁금하였다
“아버지 어디 가시나요?”
“세탁소에 갔다 오련다.”
가야극장은 아버지 머리를 식히는 세탁소였다
지난해 명절날 아버지 산소에 갔는데
아직도 자식 걱정에 머리를 세탁하시는 지
잔디를 네 번이나 심었어도 여전히 민머리다
<구름 파도를 타고> 이상갑 유고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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