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목련나무의 입 외 1편 / 정재록

시인 최주식 2010. 2. 7. 21:36

목련나무의 입 외 1편 / 정재록


입이 문 가느다란 붓의 터치에 목련꽃이 눈을 뜬다

입은 붓이 아니라 가느다란 파이프를 물고

캔버스에 꽃을 뿜고 있다

목련나무의 우듬지가 입을 오므려 뿜어내는 꽃

구멍도 없는 파이프로 꽃을 뿜는

이 입으로 하는 미술은 마술이다

아니, 입술이 부르트도록 출구가 막힌 생을 밀어 올리는

예술이다

손의 관절이 굳어 손대신 입이 붓을 쥔,

입이 말로만 하는 예술이 아니라

행동에 나선 것을 보면서

손 없이도 예술을 하는,

예술보다 월등해 보이는 꽃을 뿜는

목련나무의 입을 생각했다

목련나무 둥치가 굳건히 우듬지들을 받쳐주듯이

당신의 몸, 당신이 쏟은 힘을 힘답게 받쳐주는 바탕이 있어

구멍 없는 파이프를 물고도,

목련나무 우듬지마다 물관이 뚫리듯

당신은 입으로 꽃을 뿜는다

어떤 말보다도 그 입으로 채색하는 생이

우듬지에서 혼을 뿜는

한 그루 관절 없는 목련나무, 손을 잃은 그녀를 본다

말 많은 내 입이 절로 닫힌다.

 

몸의 현弦 / 정재록

 

일기예보를 믿느니 아내의 수술자국을 믿기로 했다

아침부터 그녀의 하복부를 좌에서 우로 죽 긋고 가는 가려움

하늘이 멀쩡한데, 여보! 우산 챙겨 가요

몸속에 부풀어 오른 먹구름을 걷어내느라

천의 무봉의 육신에 재봉선을 갖게 된 여자

그 솔기아래 억눌러 온 몸속 공허가 발작하면

비올 확률100%

먹구름이 걷히고 말짱히 개긴 하였지만

그녀의 몸은 더는 해를 품지 못하는 태허太虛

한 줄기 빗발처럼 아내의 몸을 스치고 간 메스의 추억

그 가려움이 예고하는 생의 기상도는 두고두고,

그녀의 몸을 비우고 간 먹구름을 불러올 것이다

정신보다도 먼저 몸으로 예감하는 천기天氣,

정신보다도 더 오차를 내지 않는 그 몸의 기상특보를

나는 믿기로 했다 한 여자의 몸에서

긁어도 긁어도 지워지지 않는 가려움이

발작하듯 한번 씩 먹구름을, 비를 불러온다는 것을

그것은 살 에이던 고통의 변주變奏

아내는 아침부터 긁적긁적 몸의 현을 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