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에 대한 명상 / 고영
여러 겹의 상징을 가진 적 있었지요
언감생심, 일곱 빛깔 무지개를 꿈꾼 적 있었지요
불판 위에서 한 떨기 붉은 꽃으로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 적 있었지요
흰 머리띠를 상징으로 삼았지요
피둥피둥 살 바에는 차라리
불판 위에 올라 분신자살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지요
육질이 선명할수록 사상도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거든요
달아오른 불판이 멀리 쏘아 올리는 기름은
발가벗은 내 탄식이었지요
몸 뒤틀리고 몇 번쯤 뒤집혀지고 나면
(제발, 세 번 이상은 뒤집지 마세요)
내 사명도 끝난 줄 알았지요
노릿하게 그을린 얼굴들이 참기름을 두르고 앉아
마늘처럼 맵게 미소를 주고받을 때
소원할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은
저 말라비틀어진 살점들을 어찌할까요
어쩌다 간혹 안부나 물어봐주세요
그러면 나는 그냥
무지개를 꿈꾸다 죽은 한 마리 돼지의 어쩔 수 없는 옆구리였다고,
불판 위의 폭죽이었다고,
웃기는 돼지였다고 웃으며 말할 날 있겠지요
시집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2009. 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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