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고나머지 / 황정숙
강화도 함허동천 비린내 물씬 나는 윗말 우물가
욕쟁이할매 팔순잔치 돼지 한 마리 잡던 날
동네 어르신들 번갈아 식칼 들고
왕소금에 들기름, 생고기 한 점에 술 한 모금
술독 비어 갈 무렵
담배 몇 보루와 소주 몇 박스, 젊은이가 찾아왔네
저놈은 누구니이까?
저놈이 도지사로 출마한다는 아랫말 최씨 좋고나머지*여!
노랭이 아저씨 이장 홍씨 혀 돌아가는 소리에
벌건 웃음이 눈꺼풀 내리는, 한참 늙은 좋고나머지들
그 우물가에 앉아 생각하니 모든 것이 좋고나머지
배꽃과 나비가 만든 누런 참배도
낙과로 썩어 풍장 된 열매도
널어놓은 곡식 헤집는 병아리도 좋고, 좋고나머지
붉은 단호박 하나 들고 와서 칼 대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비릿한 씨앗 젖 물린 좋고나머지
해외연수 간다고 졸라대는 내 좋고나머지
이런 것도 못해 주면서 왜 날 낳았어?
딸과 나, 나와 어머니
팽팽하게 맞서다 늑골 빠져나가는 소리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번지는 놀빛, 좋고
나머지 가득한 세상
저녁에게도 젖 한통, 좋고
나머지 울었는지 서쪽하늘 눈두덩이 우련히 붉네
* 좋고나머지 : 남녀가 사랑을 나눈 후 남은 것, 곧 자녀를 속된 말로 이르는 표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9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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