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깡통을 차다 외 1편 / 이경우

시인 최주식 2010. 2. 7. 21:35

깡통을 차다 / 이경우

 

깡통이 공으로 보일 때가 있다, 아니다

공으로 보이는 깡통이 있다

 

사소한 바람에 혼자 굴러가는,

굴러가면서도 목청을 못 내는, 그런

깡통을 나한테 자살골처럼 차 넣는다

비어서 차고, 차면 소리가 나서 더욱 찬다

세게, 아주 세게

 

그때, 발 밟힌 황구처럼

어디론가 숨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머리통을 담벼락에 들이받고, 이를테면

당구의 쓰리쿠션처럼 다시 튀어나오는 깡통을

신의 이름으로 응징하듯 따라가면서 찬다

 

이윽고, 깡통은

걷어차인 사실을 억을해 할 것이고

차다 지친 내가 그만 좌절하고 마는,

그 시간

세상의 어딘가에서 깡통들은

여전히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시집 <치악통신> 2009. 현대시 시인선

 

겨울 눈 / 이경우

 

눈이 군홧발로 온다

 

나는 장군의 군화를 밟아

추락한 놈이다

 

장군의 군화를  만져 출세한 놈들도

장군의 군화를 닦을 때마다

침을 뱉는다

 

침을 뱉아야 군화는 광이 났다

 

시집 <치악통신> 2009. 현대시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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