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을 차다 / 이경우
깡통이 공으로 보일 때가 있다, 아니다
공으로 보이는 깡통이 있다
사소한 바람에 혼자 굴러가는,
굴러가면서도 목청을 못 내는, 그런
깡통을 나한테 자살골처럼 차 넣는다
비어서 차고, 차면 소리가 나서 더욱 찬다
세게, 아주 세게
그때, 발 밟힌 황구처럼
어디론가 숨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머리통을 담벼락에 들이받고, 이를테면
당구의 쓰리쿠션처럼 다시 튀어나오는 깡통을
신의 이름으로 응징하듯 따라가면서 찬다
이윽고, 깡통은
걷어차인 사실을 억을해 할 것이고
차다 지친 내가 그만 좌절하고 마는,
그 시간
세상의 어딘가에서 깡통들은
여전히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시집 <치악통신> 2009. 현대시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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