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藥局 / 정일남

시인 최주식 2010. 2. 7. 21:50

藥局 / 정일남

 

나와 오래 사귄 알약은 채색이 알록달록 하다

손바닥에 놓고 보면 꽃밭 같다

병이란 나를 끌고가는 수레다

나는 수레를 타고 해바라기 곁을 슬쩍 지나간다

쇠똥찜으로도 고치기 어렵네요

한의사가 내 귀를 거쳐간다

그렇다면 병은 참으로 오래 살 애첩이다

나는 애첩을 숨겨놓고 살아왔네

내 살림을 그가 살아주었지

알약을 먹고 정원의 꽃밭을 바라본다

나비가 곱상하게 날아온다

나비 날개 무늬가 옛날 같다

애첩은 一家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나는 살아남은 병처럼 평범해야 한다

먼데서 이따금 찾아오는 친구가 있어 식당밥을 먹는다

알약과의 사랑은 비밀로 하고 숨긴다

애첩을 치료하는 약은 애첩이다

 

진열장이 꽃집이 되더니

내 몸 속은 약국이 되네

 

시집 <꿈의 노래> 2009. 시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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