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還生) / 정일남
오동은 비 오는 날을 기다려 미리 우산을 쓰고 춤춘다
비가 후두둑 내리면 박자부터 먼저 배운다
오동은 장년이 되어 관(棺)이 되기도 했지만
어떤 오동은 순장을 면하고 가야금이 되는 수혜를 받아
귀가 열리고 가슴이 트여 음률이 살아나
본래의 오동은 여의었으나 격이 높은 한과 슬픔으로
열두 현을 기러기발로 받쳐 연명해 왔으니
공명관 위의 탄금은 가인(佳人)의 손끝에서 청산을 부르며
넋을 잃고 흐르는 물갈래 잠재워 보려는 듯 했다
저것은 소리가 아니라 길이니
명사를 튕겨 달빛 창가에 적요가 눈 뜨면
수(繡)놓은 오색의 혼이
무늬의 깃을 치며 길을 내어 날아올랐다
귀를 한 곳으로 공들여 모았더니
가야의 음색이 완연했다
모든 물상(物像)이 눈 뜨고, 꽃 벌어졌다
오동잎 춤추는 그림자 영창에 어리어
낭인의 마음을 파고들어 흐느끼는 사이
나라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
나는 음률에 겨워 탄금소리 오동 근경(根莖)에 묻었다
누가 어느 난세에 다시 오동을 베어 귀인과 마주 앉아 탄식하리라
시집 <꿈의 노래> 2009. 시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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