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 외 1편 / 김희업
그녀가 생업을 꾸린 신전으로 초대했다
어디만큼 왔나, 문득 눈 떠보니
번지점프 하듯 아찔하다
실족하지 않는 비결을 묻자
마치 기둥을 감았다 풀었다 하며, 쇼걸처럼
매일 밤 온몸으로 실천해 보인
기둥과의 불륜에 있단다
기둥만 있다면
등나무,
그녀의 생업은 까딱없어 보였다
관능적으로 뻗어나갈수록 든든해지는 미학
아, 징그럽게 굽은 저 관능
기둥과 흘레붙는 것도 생업을 위한 거라면
당신은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온몸이 손,
저같이 집요한 약력 본적 없다
허공을 훔치는 도벽을 못 버리고
치솟는, 뿌리의 모순을 보거라
어느새 뒷모습 찾아보기 힘들다
꼬리 어디 감춰두고 끝없이 요동쳤나
하마터면 뱀이 될 뻔한 등나무
원죄에서 갓 벗어나
다음은 하늘을 엮을 차례
칼 회고전 / 김희업
당장 내게 들이대더라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오래전 칼이 내 몸을 두 차례 다녀갔기 때문
처음엔 낯선 방문자로 다가와 불쾌하게 굴던 칼,
모면하려 버둥거리다,
하는 수 없이 내 몸 칼에게 건네주었다
실은 두려웠던 건 칼끝의 감촉
살아야 한다고, 혹은 살려야 한다며
내 몸 수술대에 눕히고
칼은,
몸을 쓰윽 건드려 보았던 것이다
두 번째 칼이 방문했을 때는
서로가 서로의 몸을 탐색하듯
어서 내 몸 더 깊숙이
어딘가 있을 희망의 성감대를 찾아내어, 내심
건드려 주었으면 했다
그날 이후로 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지만
아, 알 수 없는 깊이를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오르가슴이냐!
깊이가 깊을수록 칼은 본분을 다한 것
칼의 용도란 그런 거구나
꽃 진 자리처럼 몸에 흉터로 남아 두고두고
생의 단맛 느끼게 하던 칼의 향기자국
결국 칼이 나를 살린 셈
그때 죽음을 찌르고 칼을 선택한 것은
너무 잘한 일이라 여겨진다
시집<칼 회고전> 2009. 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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