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밥상 앞에서 / 김영태

시인 최주식 2010. 2. 7. 22:07

밥상 앞에서 / 김영태

 

  묵은 김치 하나 놓고 먹는 아침 밥상 아내가 남의 말 하듯 말한다. 누구는 부모가 남겨 놓은 재산이 많거나 살아서는 자식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던데 당신은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생각도 없는데 억울하겠네요.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묵은 김치를 달그락 달그락 씹어 넘긴다. 밥을 먹던 오누이가 사슴 눈으로 나를 훔쳐본다. 신 김치를 꼭꼭 씹어 넘기고, 오누이의 발개진 볼을 향해 하얀 눈 같은 말이라고 해본다. 물려받은 재산은 거들먹거리다 홀랑 날려 먹기 십상이고 자식 일을 거들면 의타심이 생겨 혼자 인생을 가꾸지 못할까 그런 것이고, 죽기 전에는 잃어버리지 않고 잊어버리지 않을 준수한 외모와 명석한 두뇌 그리고 강인한 생활력과 튼튼한 몸을 주었는데 더 이상 바라면 나쁜 놈이지, 그렇지 않나.

 

  일요일 아침 밥상

  눈밭을 걸어가는 소리로 가득하다.

 

 

시집 <나는 모슬포가 슬프다> 2009. 도서출판 한비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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