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 신정민
사과는
사과꽃에 앉은 벌의 더듬이가
맨 처음 닿은 곳에서 썩기 시작한다
바람이 스쳐간 곳,
햇볕이 드나들며 단맛이 돌기 시작한 곳,
맨 처음 빗방울이 떨어진 곳,
사과는
먼 기찻길에서 들려온 기적소리,
사과의 귀가 맨 처음 열린 곳에서 썩기 시작한다
익어가는 거야,
씨앗을 품고 붉어지기 시작한 곳에서
사과는 썩기 시작한다
썩고 있는 체온으로 벌레를 키워
몸 밖으로의 비행을 꿈꾼다
온 힘을 다해 썩은 사과는
비로소 사과가 된다
귤 그리고 아프리카 / 신정민
자릿세 안낸다고
건달이 걷어찬 수레에서
귤들이 쏟아진다
사무라이가 한 칼에 그은 복부에서 내장이 쏟아진다
참고 참았던 오줌통이 굴러간다
길 한복판으로 굴러가는 비장이 샛노랗다
바퀴에 깔린 태양이 납작하다
거리에 풀어놓은 선명한 노란색은 아프리카적이다
태양은 아프리카의 식물들을 강하게 키운다
무릇 생명들은 저마다 강렬한 보호색을 갖는다
수레가 나동그라지는 동안
굴러가는 귤,
조금 더 강한 모습을 갖기 위해 귤은 샛노랗다
니그로의 검은 피부를 위해 태양은 작렬한다
주워 담지 못한 아프리카적 서정이
발길에 채여 뭉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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