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역 / 김종옥
문 닫힌 상가들 길게 늘어선 골목이
역사로 가는 길입니다
처마 밑에 개장국 끓이는 냄새가 진을 치고
날마다 싸움이 문을 박차고 나오는 길입니다
쓰레기가 무섬무섬 자라고
콘크리트 벽돌 틈으로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
레일을 감추고 있습니다
개복숭아 꽃이 그 남루를 다 덮던 날이었지요
꽃들을 헤치며 불쑥 기차가 들어왔습니다
꽃향기에 싸였던 역사가 화르륵 깨어나
돌계단 몇 개 문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날 돌계단을 밟고 역사 밖으로 나간 역사는 없습니다
거짓말같이 기차가 사라지고
햇볕의 무게를 못 이기는 하루가 축축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 돌계단, 지금 가야 할 곳이 있는지
없는 역사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출발시간도 도착시간도 놓친
무릎 꺾인 풀들이 부숭부숭 자라 있습니다
*수인역: 인천 협궤열차 종착역. 지금은 선로 흔적만 있음.
시집<잠에 대한 보고서> 2009. 종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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