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명궁(名弓) -차주일(1961~ )

시인 최주식 2010. 2. 9. 21:30

명궁(名弓) -차주일(1961~ )

봄은 겨울에 잠입한 궁사이다

길을, 강을, 산맥을 활줄로 끌어당겨 그러쥔

첫눈은 굽은 곳에 모여서 주먹으로 언다

봄의 손아귀 아래

촉을 벼린 채 허공을 겨눈 민들레 한 뿌리

탄력을 장전한 화살처럼 떨고 있다

맨 먼저 얼어 맨 나중 녹는 탄력으로 맨 먼저 축축한 음지는

무엇보다 앞서 새싹을 쏴 올린다

민들레씨앗은 음지의 효시여서 제 그림자에 명중한다

굽은 곳마다 매복해 있던 궁사들이 활줄을 놓는다

지상이 온통 음지로 환하다


잔설 분분한 산사에서 차향(茶香) 하 그윽해 물었더니 “저 산이 언 몸 풀어 처음 내놓은 잎을 덖은 차”라고. 산도 몸을 푼다는 말 참 귀히 얻어들었는데. 그렇군요. 활등처럼 언 산과 강과 땅 봄 잉태해 불룩하군요. 팽팽한 겨울 시위에 봄 화살 장전돼 있었군요. 겨울 몸 풀려는지 비는 질척이고. 천지는 곧 봄을 낳는 환한 음지 되겠군요.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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