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부고 / 윤준경
버섯이 죽었습니다
죄도 없이
오늘 아침에
아침마다 오르는 산길에서
비온 뒤 어릴 적 나무덤불 밑에 뽀얀 지붕 올리며
옹기종기 마을 이루던 반가운 버섯, 예서 만나다니
'너 버섯 맞지?' 하고
발로 툭 쳤습니다
버섯이 죽었습니다, 흰 살과 뼈를 드러내고
뽀송뽀송 맑은 내장 억울함도 없는 듯
윤진사댁 아흔 아홉간 기와집처럼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누가 보나 흘끔 돌아보며
땅만 땅땅 밟고 오는데
버섯이 따라옵니다
죄도 없이 죽었노라고
잘라진 목과 다리를 끌며
집까지 따라옵니다
이불까지 따라옵니다
장례식은 없습니다
버섯? 제가 어쩔라고요?
시집<다리 위에서의 짧은 명상> 2009년 도서출판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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