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모서리의 기원 / 양현근

시인 최주식 2010. 2. 9. 22:26

모서리의 기원 / 양현근


한 눈을 팔다 또 침대 모서리에 무릎을 부딪쳤다

이제 익숙할 때도 됐는데 이 모양이라니

아픈 무릎을 쓰다듬는데

몇 번을 나를 겨누고도 아무 흔적이 없는 모서리

내 불쌍한 무릎만 또 며칠 푸르게 익어갈 것이다


그러게 조심 좀 하랬잖아요

마누라가 내미는 또 다른 모서리

저 모서리도 평생 닳을 줄 모르지

툭 내밀고 돌아서는 모서리를 아내는 금방 잊겠지만

나는 푸른 멍이 한 겹 더 얹히는데

그러고 보니, 온통 모서리 천지더군

따지고 보면 모서리 아닌 게 어디 있겠어

사는 게 모서리에 긁히다가 결국

모서리에 스며드는 일이지

멀리 둥근 달이 어느 빌딩의 모서리에

쿡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


본래 모서리는 죄가 없을 터이다

어설픈 달도 어설픈 나도

모서리에 너무 익숙했던 탓이다

푸르스름한 보름달이 어둠을 매만지고 있다

 

게재지: 열린시학

<시향> 현대시펼쳐보기. 2009.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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