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 최승헌
밥값을 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떠났다
밥의 힘이 무엇인지 알 만한 사람들이
황급히 던져두고 간 빈 밥그릇에
잔인한 바람이 떠돌고 있다
오뉴월 뜨거운 하늘에
침이라도 뱉고 싶을 만큼 쓸쓸한 날,
밥을 데워주던 사람들은
제 가슴에 밥을 퍼서 묻었다
구천*에 가서는 익을 대로 익은 밥을 꺼내
날마다 밥을 축내며 살아가는
무사한 이들에게 눈처럼 뿌려 주겠지
차마 눈꺼풀 내려지지 않아
중유**의 넋으로 떠돌며
설익은 밥처럼 엉겨 붙지 못해
재고 따지는 세상을 몽땅 지워 주겠지
개도 먹을 때는 제 밥통만 쳐다보는데
남의 밥통이나 곁눈질하며
밥값을 못 하는 나,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다
*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가는 땅속 깊은 곳을 이르는 말.
** 사후死後, 다음 생을 받기까지의 49일간의 기간을 말함.
<정신과표현> 2009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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