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밥값 / 최승헌

시인 최주식 2010. 2. 9. 22:49

밥값 / 최승헌

 

밥값을 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떠났다

밥의 힘이 무엇인지 알 만한 사람들이

황급히 던져두고 간 빈 밥그릇에

잔인한 바람이 떠돌고 있다

오뉴월 뜨거운 하늘에

침이라도 뱉고 싶을 만큼 쓸쓸한 날,

밥을 데워주던 사람들은

제 가슴에 밥을 퍼서 묻었다

구천*에 가서는 익을 대로 익은 밥을 꺼내

날마다 밥을 축내며 살아가는

무사한 이들에게 눈처럼 뿌려 주겠지

차마 눈꺼풀 내려지지 않아

중유**의 넋으로 떠돌며

설익은 밥처럼 엉겨 붙지 못해

재고 따지는 세상을 몽땅 지워 주겠지

개도 먹을 때는 제 밥통만 쳐다보는데

남의 밥통이나 곁눈질하며

밥값을 못 하는 나,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다

 

 

*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가는 땅속 깊은 곳을 이르는 말.

** 사후死後, 다음 생을 받기까지의 49일간의 기간을 말함.

 

<정신과표현> 2009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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