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피어 있는 구석 벽 / 김은정
따글따글한 정오,
해가 해바라기를 바라보고 있다
해만 바라보고 산다는 일, 참으로 허리 아픈 경험이란 것
전생에 뼈저리게 울먹울먹 곪았던 걸까
중천에서 이글거리는 해가 오히려 혼신을 굽혀 자기를 바라보도록
도도하게 핀 해바라기 한 송이의 현재 참으로 기특하다
사람손이 뿌린 씨는 아닌 듯
아무리 살펴도 바람 손이 뿌린 듯만 한
해바라기 몸 한 채의 현재진행형 가없이 튼튼하다
기댈 언덕과 다리 뻗을 곳 보아가며 자리 잡는 일
아직도 가끔 서투르고 둔하여 수수리 수수리
길한 터 흉한 터 풍수지리설에도 가끔 발을 담그는
사람 사람이여, 저 천한 자리의 해바라기 좀 보아라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질척한 자갈 뒹구는 값싼 구석에 제 귀한 뿌리를 내린 후
햇빛과 동급으로 턱 버티고 섰으니
어느 새 해가 해바라기를 귀하게 모신다
<사몽의 숲으로> 110 시인선 (시산맥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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