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수다 / 전기철
나는 밀고자, 육교에서 청색 얼굴을떨어뜨린다.
처음에는 방과 길, 그리고 담장 아래에서 훔친 물건들을 떨어뜨렸지만 곧 시들해져서 살아 있는 고양이를 떨어뜨렸다.
청색 얼굴은 늘 고양이 울음소리를 낸다. 그때마다 육교는 출렁인다.
차들이 치사량으로 달리는 육교 아래
먼 대륙
밀고자는 어지럼증에 시달리다 못해 달나라로 가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육교에 올라선다.
육교는 몸부림친다.
옆집 누나의 방으로 기어든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켜본 후로
아버지가 누나에게 뱉어낸 무늬들
일기장에도 적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름끼치도록 비밀스런 무늬들을
육교에서 떨어뜨린다.
육교는 칭얼거린다.
저 낯선 대륙을 향해 육교는 충분히 수다스럽다.
청색 얼굴은 먼 나라로 떠나간다.
아버지는 모든 밤의 밀고자들을 따돌리려 헛기침을 떨어뜨리며
마당 위에 내려와 있는 대륙을 몇 바퀴 돌다가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가지만
아버지가 떨어뜨려 놓은 기침이 내가슴에서 반짝이는 걸 볼 때
다른 대륙으로 떨어지는 청색 얼굴의 잔인한 밀고자의 본능을 본다.
누나는 먼 나라로 시집을 갔는지 다시는 우리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 사랑하는 척 했다.
밀고자가 있는 마을에서는 날마다
청색 얼굴이 먼 대륙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로깡땡의 일기> 2009. 황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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