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숲 속에서 / 김지향
이른 아침 산을 오른다
아직 바람은 나무를 베고 잔다
동쪽 하늘에 붉은 망사 천을 깔던 해가 숲을 깨운다
숲은 밤새 바람에게 내준 무릎을 슬그머니 빼낸다
베개 빠진 바람머리 나뭇가지에 머리채 들려나온다
잠 깬 산새 몇 마리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그네를 뛰는 사이 숲들이 바람뭉치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북채가 된 가지로 산새의 노래를 바람 배에 쏟아 부으며
탬버린이 다 된 바람 배를 치느라 부산떤다
입 다물 줄 모르는 가지가 종일 바람바퀴를 굴린다
숲 속은 진종일 탬버린 소리로 탱탱 살이 찐다
세상을 때려주고 싶은 사람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아래서 위로 숲을 안고 돌며 바람바퀴를 굴리는
숲의 재주를 배우느라 여름 한 철을 숲에서 산다
시집<길을 신고 길이 간다> 2009. 모아드림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국 앞에서 / 신달자 (0) | 2010.02.09 |
---|---|
악어의 수다 / 전기철 (0) | 2010.02.09 |
유리병 속의 가을 / 최형심 (0) | 2010.02.09 |
부레옥잠 / 장정자 (0) | 2010.02.09 |
앵두씨 / 이정화 (0) | 2010.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