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장례식 / 김충규
비를 뿌리면서 시작되는 구름의 장례식,
가혹하지 않은 허공의 시간 속에서 행해지는 엄숙한,
날아가는 새들을 휙 잡아들여 깨끗이 씻어 허공의 제단에 바치는,
죽은 구름이 살을 찢어 빗줄기에 섞어 뿌리는,
그 살을 받아먹고 대숲이 웅성거리는,
살아있는 새들이 감히 날아갈 생각을 못하고 바르르 떠는,
하늘로 올라가는 칠 일만에 죽은 아기의 영혼을 아삭아삭 씹어먹는
산 자들은 우산 속에 갇혀 보지 못하고 죽은 자들만이 참여하는,
지상에 흥건하게 고이는 빗물에 살 냄새가 스며 있는,
그 순간 나무들의 이파리가 모두 입술로 변해서 처연하게 빗물을 삼키는
손가락으로 빗물을 찍어먹으면 온 몸에 구름의 비늘이 돋는,
비를 그치면서 끝나는 구름의 장례식.
시집 <아무 망설임 없이> 2009.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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