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화 / 나혜경
단단한 알을 쪼겠다고 며칠 전부터 햇살의 부리는 더 야물어졌다 찬바람 얼세라 겨우내 햇볕에 궁굴린 꽃눈을 콕 ․ 콕 ․ 콕 ․ 콕… 부리로 쪼기 시작하자 알에서 깨어나는 꽃잎들 , 삐약삐약 걸어나오는 햇병아리들
항복, 항복
부리가 닿는 순서대로
순순히 걸어나오는 생강산수유개암조팝박태기…꽃잎들
강물도 참지 못하고 물껍데기 밖으로 은비늘 세워 파닥파닥
아직 겨울인 내 가슴도 여러 날, 쫀다, 콕콕콕콕콕콕콕콕
졌다 졌어, 두 손 두발 들고 나도, 항복
눈이 부셔 눈 먼 나에게도 나비는 날아와 입을 맞추고
전세(戰勢)가 기울어진 이 봄, 끝내 백기 한번 들지 못해
캄캄한 것들의 얼굴은 음지쪽으로 만발하듯 더 깊어지고
올봄도 햇살의 승리다
그 많은 알들 쪼아 다 제편 만드느라
주둥이가 얼얼한 봄 햇살
<금요시담> 11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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