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누에 / 김기찬

시인 최주식 2010. 2. 12. 23:00

누에 / 김기찬

 

누에는 기차와 닮았다

한 마리 길다란 누에가 혼신의 힘을 다해

뽕나무 가지를 오르듯

기차는 뽕잎 갉아먹는 소리를 내며

멀리서 레일 위를 밟고 온다

 

실크로드를 향해 가는 동안

알(卵)에서부터 오령(五齡)역 까지는 한 달이 걸린다

 

마침내 기차가 어둠의 터널에 들 듯

칸칸마다 투명한 누에는 허공 속 암흑에 든다

 

바람도

흙도

물도

마지막 출구도 없는, 암흑의 껍질은 희고 둥글다

 

갑자기 나는 숙연해진다

저 한 평의 암흑을 짓고

아버지는 83년을 웅크렸다 나비가 되었다

 

<금요시담> 11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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