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이 뚜렷하다 / 문인수
해 넘긴 달력을 떼자 파스 붙였던 흔적 같다.
네모반듯하니, 방금 대패질한 송판 냄새처럼 깨끗하다.
새까만 날짜들이 딱정벌레처럼 기어나가, 땅거미처럼 먹물처럼
번진 것인지 사방 벽이 거짓말같이 더럽다.
그러니 아쉽다. 하루가, 한 주일이, 한 달이
헐어놓기만 하면 금세
쌀 떨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갔다. 공백만 뚜렷하다.
이 하얗게 바닥 난 데가 결국,
무슨 문이거나 뚜껑일까
여길 열고 나가? 쾅, 닫고 드러눕는 거?
올해도 역시 한국투자증권,
새 달력을 걸어 쓰윽 덮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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