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 / 정양
마을 공터에 버스 한 대 며칠째 눈에 파묻혀 있다
길들이 모두 눈에 묻혀서 아무 데나 걸어가면 그게 길이다
아무 데나 들어서면 거기 국수내기 화투판 끝에
세월을 몽땅 저당잡힌 얼굴들이 멸칫국물에
묵은 세월을 말아 먹고 있을 외딴집 앞
눈에 겨운 솔가지 부러지는 소리
덜프덕 눈더미 내려앉는 소리에
외딴집 되창문이 잠시 열렸다 닫힌다
잊고 살던 얼굴들이 모여 있는지
들어서서 어디 한번 덜컥 문을 열어보라고
제 발자국도 금세 지워버리는 눈보라가
자꾸만 바람의 등을 떠민다
시집<철들무렵> 2009.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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