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지붕 집 / 장정자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소리의 탑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데
지붕위로 흐르는 계절도 낚아채 탑 속에 차곡 재워놓고
참새소리 까치소리 탱자 꽃 터지는 소리도 녹음해놓고
소나기 소리에 콩 볶아먹고 나뭇잎 떨어지면 지짐 부쳐 먹고 바람
스산한 날엔 귀신놀이, 눈 오는 날은 시뻘건 장작불로 달인 조청 먹는 날
소리란 소리 모두 쌓아놓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리듬이 저절로 몸에 흐르네
멜로디 스틱같이 길고 짧은 키가 토닥토닥 노래가되다 와르르 무너져
이별이 눈물이 슬픔이 아코디언같이 흩어졌다 모였다
그 또한 음악이 되어 모두 쌓이고
바람 불지 않아도 지붕이 웅웅 우는 때, 집이 혼자 구시렁거리면
지붕이 나이 먹는 소리라고, 때로는 집도
사람의 가슴으로 피접 드신다며 몸가짐 조용히 아버지 말하셨네
그 탑 속의 오래 된 젖은 소리 꺼내어 말려 놓는 일
소리도 잘 익어 화엄 되어 다보탑 석가탑 된다는데
귀는 녹슬어도 작고 낮고 젖은 제 소리는 멀리서 구신같이 알아듣는 집
<다시올문학> 2010. 봄호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두밥 진밥 외 1편 / 김진기 (0) | 2010.03.14 |
---|---|
십일월 / 정수경 (0) | 2010.03.14 |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김선우 (0) | 2010.03.08 |
별 / 박완호 (0) | 2010.03.06 |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 박영근 (0) | 2010.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