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양철지붕 집 / 장정자

시인 최주식 2010. 3. 14. 23:06

양철지붕 집 / 장정자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소리의 탑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데

지붕위로 흐르는 계절도 낚아채 탑 속에 차곡 재워놓고

참새소리 까치소리 탱자 꽃 터지는 소리도 녹음해놓고

소나기 소리에 콩 볶아먹고 나뭇잎 떨어지면 지짐 부쳐 먹고 바람

스산한 날엔 귀신놀이, 눈 오는 날은 시뻘건 장작불로 달인 조청 먹는 날

소리란 소리 모두 쌓아놓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리듬이 저절로 몸에 흐르네

멜로디 스틱같이 길고 짧은 키가 토닥토닥 노래가되다 와르르 무너져

이별이 눈물이 슬픔이 아코디언같이 흩어졌다 모였다

그 또한 음악이 되어 모두 쌓이고

바람 불지 않아도 지붕이 웅웅 우는 때, 집이 혼자 구시렁거리면

지붕이 나이 먹는 소리라고, 때로는 집도

사람의 가슴으로 피접 드신다며 몸가짐 조용히 아버지 말하셨네

그 탑 속의 오래 된 젖은 소리 꺼내어 말려 놓는 일

소리도 잘 익어 화엄 되어 다보탑 석가탑 된다는데

귀는 녹슬어도 작고 낮고 젖은 제 소리는 멀리서 구신같이 알아듣는 집

 

<다시올문학> 2010.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