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밥 진밥 외 1편 / 김진기
밥을 먹다가 문득
내가 진밥을 닮아 간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적 어머니는 아버지의 입맛에 따라
진밥을 지었다
씹힐 때 고소하게 우러나오는 고두밥의 맛과는 달리
숟가락에 질척질척 매달리며
목구멍을 은근슬쩍 넘어가는 진밥이 나는 싫었다
숟가락으로 푹푹, 진밥에 화풀이를 해댔다
유별난 철부지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눅눅하지 못하고
곤두선 고두밥알처럼 튀어나가기 일쑤였다
거센 세월의 비바람이 나를 지나갈 때 마다
내 고슬고슬한 고두밥은
꼿꼿한 관절을 풀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눅눅한 진밥으로 돌아앉았다
밥은 나를 만만히 본 것인지
언제나 생각대로 지어지지 않아
때론 진밥 선밥 죽밥 삼층밥 고두밥 생밥의
각기 다른 개성으로 태어난다
진밥은 그냥 먹지만 성미 까칠한 밥은
다시 물을 부어 강한 불로 주물러서
뼈대가 흐물흐물해지면 휘휘, 저어 먹는다
온종일 방구석을 구르던 나는
배가 고파 오자 다시 찬밥 덩어리에 물을 붓는다
새가슴 / 김진기
닭 앞가슴 살을 사왔다
어젯밤
밤새도록 홰를 친 아픈 가슴을 만져보았다
돌기된 새가슴에서 아직 활개의 미동이 들린다
강물의 젖가슴을 물수제비뜨며
비상하는 새의 여유자적을 보고 온 밤이면
비몽사몽간 근본을 잊지 말라고
가신 할아버지는
낮게 가르치고 가셨다
개기름 냄새나는 도시 뒷골목에서
먹이를 구걸하던 새,
밤이 되자 어디서 힘이 솟는지
펄쩍펄쩍 하늘을 연거푸 뛰어 오른다
창공은 내 고향이라고,
일생의 꿈은 저기 있다고 연거푸 뛰어 오른다
너는 새가 아니야
닭이야
새는 종내 가슴을 바닥에 찧고서야
아픈 꿈을 열고 나왔다
앞가슴 살을 먹는데 가슴이 이상하다
까뭇까뭇 솜털이 배어나온다
동그란 접시 위에
중년의 퇴화된 날개가 바동거린다
<다시올문학> 201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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