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자라는 이유 / 정용화
난간 위 물방울이 아슬아슬하다
겨울을 거울로만 읽지 않았어도
꽃은 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먼 나라 소식을 전하듯 가물가물 하나의
반짝임으로 빛나는 물방울을 보지 않았어도
봄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거울 속에서 부서지고 깨어지는 것으로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나날들
아무도 모르게 숨어 있는
내가 아무리 길게 손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깊은 곳에서 붉은 울음으로 흐르는 상처의 내력들
가까이 다가온 적도 없지만
멀어져가는 너에게 가는 길은
꽃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어떤 소리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단단함 속에서
그늘이 그늘을 끌어안고 어둠으로 자라듯
상처를 안고 봄은 꽃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얼었던 마음이 물방울로 풀리면서 서둘러 꽃을 피운다
거울에서 겨울이 그리고 봄이 벗어나와
가지마다 그렁그렁 맺혀 있다
하나의 반짝임으로 흐르다가
봄을 위로하기 위해 꽃으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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