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 정수경
법률사무소 앞 벤치에
십일월 햇살이 주춤거린다
파산선고 받은 은행잎들
벚나무 둥치 돌아 골목 뒤지는 바람에
스산하게 밟히고
저녁이 지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빌딩 그림자 깊숙이 눌러쓰고
벤치를 지고 있는 사내
세상으로 나가는 모든 페이지가 봉인되었다
주저앉을 듯 구겨진 정강이,
구두 볼에 묻은 막걸리의 흔적
허물어진 계단을 저 혼자 오르고 있다
단풍 드는 벚나무
떨어지는 나뭇잎 자근자근 밟으며 웃는 아이야
함부로 밟지 마라,
깨진 유리창의 칼금으로
비명을 도려내고 있으니
잠든 가방을 추슬러 그가 일어선다
홀쭉한 가방이 바짝 옆구리를 파고든다
긴 그림자를 접어 사라진 골목 어귀
잎 지는 자리마다
꽃눈의 새 눈이 겹쳐진다
계간<문학.선>200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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