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바다와 나비 - 김기림(1908 ∼ ?)

시인 최주식 2010. 3. 14. 23:11

바다와 나비 - 김기림(1908 ∼ ?)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렸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3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한 마리 나비에게 우주란 얼마나 가없는 넓이인가. 아무도 그 깊이를 일러준 적이 없어서 바다 위를 나는 나비는 두려움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무모하고 불안한 생명을 가졌기에 존재의 날갯짓은 저렇게 고단할 수밖에 없는 것! 청무우 밭인가 내렸다가 날개만 적신 흰나비 한 마리, 아뜩한 바다 위를 홀로 날아간다. 초승달처럼 눈 시린 우리들 실존이 거기 투영되어 있는 것만 같다. <김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