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넌 어때? / 이정란

시인 최주식 2010. 3. 23. 22:14

넌 어때? / 이정란

 

  등바랜기우뚱한의자야 상상하지못하는복사기야 철지난문예지야 몇년째같은문구안고있는상패야 말못하는전화기야 손안닿는책꽂이에쌓인먼지야

  매일 보이는 얼굴이 심-심-하니?

  빨간 고무장갑아, 내 손가락 잘라 끼우고 싶니?

  계란아, 내 머리를 계단으로 굴리고 싶니?

  비누야, 내 살 녹여 거품으로 만들고 싶니?

  귓불 애무하는 속삭임이 자냥스럽지 않니, 공기야?

  몸 안에 사육하는 것들 차례차례 죽이고 잔디만 키우고 있는 속수무책아,

  도굴당한 왕릉 같구나

  오래된 책이 그러듯 신선한 이파리 하나 떨어뜨려 봐

  일상 싸먹고 환해지게

  요즘 밤마다 삼각산 성벽에 불이 환하게 켜지더라

  산 싸먹고 어둠 싸먹고 밤하늘 아래 혼자만 환해 있더라

  성벽 기어오르던 작은 벌레들도 다 먹혀 빛이 되어 있을걸

 

  난 어떠냐고?

 

  <열린시학> 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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