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켜다 / 강여빈
그늘을 드리우던 나무 한 채
가문과 뼈대로 백년을 누린다는 야마하가
간절한 손끝에 끌려왔다
정성을 기울여 뚜껑을 걷어내자
백옥처럼 하얀 몸이 우르르 튕겨 나왔다
그 여린 살을 찢고 가지 치며 쏟아져 나오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클레멘티 소나티네 다장조
하이든 소나타
어깨 너머 혼자 터득한
악상이 버드나무의 이파리처럼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창가에 붙이니 햇빛이 쏟아진다
여린 몸이 볕에 쉬 삭을까, 벽 쪽으로 바싹 밀자
그제야 생기가 도는 잎사귀들
저 하얀 잎을 한 장 한 장 주무를 때마다
새가 날아와 울다 가고
새록새록 푸른 5월이 바람을 쏟아낸다
저 잎새들 !
재잘거림이 나무의 몸통을 치며 하늘로 솟고
눈부신 나무 한 채
아름드리 정원을 세우고 있다
<다시올문학>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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