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생산자이력제 / 김경곤

시인 최주식 2010. 3. 23. 22:21

생산자이력제 / 김경곤

 

십년 만에 폭설이 내려 닭장을 주저앉혔다

쓰러진 잔해 속에서 꺼내는 닭은 평온했다

간간히 살아남은 닭을 출하하고서야 나도 주저앉는다

 

통닭을 주문하고 술을 마신다

티브이 속 실시간으로 지진사태 중계를 보며

접시에는 할복한 닭이 엎드려 있다

닭의 등으로 이별을 읽는다

술이라는 깔끔한 마취제는 싸고도 흔하지

진흙과자 같은 다리를 뜯어 마리 수 늘리며

이젠 구질구질한 치기는 구겨 넣자

불에 덴 듯 부끄러움은 마취되고

발화스위치처럼 툭 술잔을 놓친다

냉소적인 술잔 넘어 깍두기를 먹고 있는 모가지,

생경한 날개가 솟대처럼 깃털을 세운다

허벅지를 밟아대는 뼛조각, 사고의 폭은 축소되고

후드를 뒤집어 쓴 통닭에 삼지창을 들이민다

해체된 통닭의 밀어 속에서 구출 해 낸 살덩이,

터벅터벅 마취 된 통닭의 꼬인 발자국 따라

시선 끌고 간 쓰레기장에 의기소침함이 앉아있다

 

다 버리고 자리에 앉자 잔해더미 속의 종이 한 장

퍼즐 같은 생산자이력제 식별번호 13432576,

소리 없이 얼어붙었다

 

<다시올문학>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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