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이력제 / 김경곤
십년 만에 폭설이 내려 닭장을 주저앉혔다
쓰러진 잔해 속에서 꺼내는 닭은 평온했다
간간히 살아남은 닭을 출하하고서야 나도 주저앉는다
통닭을 주문하고 술을 마신다
티브이 속 실시간으로 지진사태 중계를 보며
접시에는 할복한 닭이 엎드려 있다
닭의 등으로 이별을 읽는다
술이라는 깔끔한 마취제는 싸고도 흔하지
진흙과자 같은 다리를 뜯어 마리 수 늘리며
이젠 구질구질한 치기는 구겨 넣자
불에 덴 듯 부끄러움은 마취되고
발화스위치처럼 툭 술잔을 놓친다
냉소적인 술잔 넘어 깍두기를 먹고 있는 모가지,
생경한 날개가 솟대처럼 깃털을 세운다
허벅지를 밟아대는 뼛조각, 사고의 폭은 축소되고
후드를 뒤집어 쓴 통닭에 삼지창을 들이민다
해체된 통닭의 밀어 속에서 구출 해 낸 살덩이,
터벅터벅 마취 된 통닭의 꼬인 발자국 따라
시선 끌고 간 쓰레기장에 의기소침함이 앉아있다
다 버리고 자리에 앉자 잔해더미 속의 종이 한 장
퍼즐 같은 생산자이력제 식별번호 13432576,
소리 없이 얼어붙었다
<다시올문학>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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