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레날린의 할거 / 이민화
반쯤 열린 쪽창을 타넘는 바깥이 심상치 않다
해시시 풀려오는 풀향기에 취해 하마터면 추락할 뻔했다
대초원을 달리는 얼룩말의 속도만큼
아드레날린의 바깥은 깊고 푸르게 틔었다
숨이 가빠져서 양쪽 팔을 쭉 찢은 나는 발코니에
배꼽을 늘어뜨리고 은하철도999를 부른다
인생이 별건가? 이류면 어떻고 삼류면 어떤가?
달콤한 침묵은 너를 찢는 마성을 즐기니까
내 몸에서 데쳐진 빗방울이 발 아래 바위를 내리친다
아늑한 사원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그러나
욕심이었다, 분명한 것은 이미 꽃을 들이기 전
화병처럼 미리 상대를 파악한 네모난 표정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저만을 위해 숨죽인 자전,
한번 속았다면 또 속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느긋한 바닥이 되라는? 이를테면
그냥 바위의 일방적 할거라고 해두자
바람이 고양이 발톱을 세우자 숲은 한바탕 파고가 인다
남학생들이 교복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비틀거리는 은행나무를 붙들고 간다
책가방이 젖는 것 즐기는 듯 허밍허밍거리는데,
늙은 전봇대가 뭉텅, 잘라먹는다
전봇대에서 빵싯거리던 순한 빗방울은 종적이 묘연하다
부사적 바람이 아니므로 털 없는 음부가 된 것이다
접촉이 심해지면 감각이 내성을 얻으므로
간단명료한 말들은 아드레날린의 본질을 흐리게 했다
<다시올문학>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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