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조명 / 최승헌
당신 몸은 어둡거나 밝은 적이 없어서 내가 은밀하게 드나들기에 좋군요
여기는 당신 몸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서 아주 편안해요
선명하다는 건 자신을 다 까발려서 내보이는 것이니까 신비함이 없지요
만약 당신이 차갑거나 뜨겁거나 한 가지 느낌으로만 내게 들어온다면
갑자기 내 몸이 차단되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 몸은 나를 부끄럽지 않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나는 당신 몸속에서 해가 뜨거나 때로는 마법의 싹처럼
나무가 쑥쑥 자라나는 것을 즐겁게 지켜봐요
우리에겐 프로토콜*같은 거래는 없었지만
당신의 황홀한 몸짓이 내 민감한 신체의 리듬을 움직이게 해요
환한 빛이 당신 몸속, 구석구석을 비추지 않아도
당신은 얼마나 당돌한 온기로 내 몸을 아늑하게 데워주는지요
당신만이 해낼 수 있는 대단한 몸의 울림이지요
* 컴퓨터 과학에서 전자기기들 사이에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규칙이나 절차를 모아놓은 통신상의 규칙과 약속.
<시안> 2010년 봄호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에 대한 예의 / 황인숙 (0) | 2010.03.31 |
---|---|
포도씨를 먹는 여자 / 전건호 (0) | 2010.03.31 |
향나무의 소유권 / 마경덕 (0) | 2010.03.31 |
아드레날린의 할거 / 이민화 (0) | 2010.03.23 |
아름다운 위반 / 이대흠 (0) | 2010.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