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씨를 먹는 여자 / 전건호
아내는 포도를 씨앗 채 삼킨다
삼킨 씨앗들이
기름진 자궁에서 싹을 틔워
마음의 넝쿨로 뻗어나는지
오지랖 포도넝쿨 같다
머문 곳마다 포도송이 같은 입담을 매단다
단내를 맡고 벌떼가 모여 들 듯
동네 아줌마들이 꼬인다
동분서주, 약속이 넝쿨처럼 꼬여 어쩔 줄 모른다
왕성한 수화로 나를 휘감을 때면
그녀 푸른 입담에 칭칭 감긴 수수깡 같다
관절마다 푸른 싹이 돋아
나를 온통 파랗게 휘감아
주렁주렁 포도알 같은 주문을 걸어놓는다
비옥하기만 한 아내의 속에서 돋아난 푸른 싹
내 마음 뻥 뚫린 구멍까지 파고들어 덮어버린다
주렁주렁 매달린 송이에
휘어지고 부러져도
그녀의 잔소리 쉴새없이
온 몸을 휘감아 오를 땐
그녀를 떠받치는
지주목이 된 거 같다
<시와세계> 2009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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