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꽃에 대한 예의 / 황인숙

시인 최주식 2010. 3. 31. 23:17

꽃에 대한 예의 / 황인숙

 

유독

꽃을 버릴 때가 되면

곤혹스럽다

재활용은 안될 테고

일반쓰레기 봉투랑 음식물쓰레기 봉투

어느 쪽에 버리는 게 마땅한지

망설이다 종종

동네화단 덤불에 슬쩍 얹어놓곤 했다

 

때가 되어간다

이미 지났을지도

꽃병은 바닥까지 말랐을 것이다

물을 부어주는 게

왠지 계면쩍었던 때가

그때였을까?

 

꽃병 속에서

시든 꽃이 말라간다

낱낱 꽃잎들과 꽃가루가

식탁 위와 방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있다

전날도 아니고, 전전날도 아니고

오래 전 화장이 얼룩덜룩

빛바랜 꽃이여

유독

꽃을 버리는 건

버릇이 되지 않는다

버릇처럼 피어나

버릇처럼 시드는

꽃을.

 


- 『시평』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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