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대한 예의 / 황인숙
유독
꽃을 버릴 때가 되면
곤혹스럽다
재활용은 안될 테고
일반쓰레기 봉투랑 음식물쓰레기 봉투
어느 쪽에 버리는 게 마땅한지
망설이다 종종
동네화단 덤불에 슬쩍 얹어놓곤 했다
때가 되어간다
이미 지났을지도
꽃병은 바닥까지 말랐을 것이다
물을 부어주는 게
왠지 계면쩍었던 때가
그때였을까?
꽃병 속에서
시든 꽃이 말라간다
낱낱 꽃잎들과 꽃가루가
식탁 위와 방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있다
전날도 아니고, 전전날도 아니고
오래 전 화장이 얼룩덜룩
빛바랜 꽃이여
유독
꽃을 버리는 건
버릇이 되지 않는다
버릇처럼 피어나
버릇처럼 시드는
꽃을.
- 『시평』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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