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 황상순
과도로 사과의 배꼽을 파내다가
돌연 아랫배가 욱신거린다
맹장은 떼어낸 지 오래, 누가 칼을 곧추 세워
내 배꼽을 도려내는 것은 아닐까
그래, 나는 아주 오래 잊고 지냈다
꽃이 떨어진 자리 굳은 상처
배꼽은 더 이상 자라는 것이 아니어서
무럭무럭 커가는 열매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파면 팔수록 아픈 오목한 상흔일랑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주름진 뱃살 사이 홀로 깊어진 배꼽
등 뒤에 있었으면 궁금하여
이리 저리 거울에 비춰도 보았으리
흰 과육 안에는 씨를 감싸고 있는 딱딱한 밀실
통째로 다시 이를 도려내기 시작한다
정관수술을 할 때처럼 이번엔
아랫도리 씨방이 울울 아파온다
시집<농담> 2010. 현대시 시인선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개의 마을 / 김성수 (0) | 2010.04.12 |
---|---|
저 할머니의 슬하 / 문인수 (0) | 2010.04.12 |
독무(獨舞) / 엄원태 (0) | 2010.03.31 |
꽃에 대한 예의 / 황인숙 (0) | 2010.03.31 |
포도씨를 먹는 여자 / 전건호 (0) | 2010.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