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안개의 마을 / 김성수

시인 최주식 2010. 4. 12. 22:15

 

안개의 마을 / 김성수

 

1

폐수 속에도 안개는 숨어있었다

 

2

한 때는 들숨 한 번에도 몸을 적시던 하천에는

버드나무 휘어진 잎새들이

물결을 간질이고, 까르르 밀려나던 물살들

등허리에 빛을 이고 흘러내렸다

그 속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것들은 맑았다

 

풀잎이 밤새 업고 있던 이슬을 굴려

떠나는 일행들과 함께 할 때,

손님을 맞는 주인의 겸손한 상차림같이

상위에 덮어둔 순백의 식탁보같이

걷히던 안개는 마을의 자랑이었다

마을의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소독하던

안개가 새색시같이 얌전히 재를 넘으면

목욕탕에서 막 나온 여인의 뽀얀 피부같이

드러난 마을이 뽀드득 빛나던 때도 있었다

해맑은, 이 표현에서 목이 메인다

못질 하나에도 배려하던 마음으로

마을은 튼튼하게 자리를 잡았었다

 

3

알고 말고, 이 말이 퇴색한 잎으로 매달린 채

벌레들이 집을 지었다

높게 담을 쌓고 그늘만 넓히는 이들과

더불어 쉽게 버리고 흘려버린 구정물 같은 세월 속에,

그런 그 속에 비릿한 안개도 자라고 있었다

비릿한 아침을 나누어 가지며

사람들은 찡그리고

눈을 비비며 꼬마가 달려 나와

둑 밑으로 오줌을 눈다

코를 막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장 한 장 지우고 있는 안개

 

상쾌한, 이 단어를 잃어버린 마을위로

폐그물을 던져놓은 안개를 보며

마른기침을 하는 노인의 뒤켠에

무너질 듯 마을이 흔들렸다

 

  시집 <걸음의 공식>2010. 다시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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