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안에서의 봄 / 조원
수족관에 벚꽃이 피었다. 담벼락을 타고 오르듯 유리벽 위 사방 연속무늬로
다리를 펼치는 문어
너의 지붕은 너무 투명해서 괄약근 풀어진 음부까지 보인다
물속 향기는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물의 꽃은 물속에서만 지는가
난무한 가지로 꽃 걱정 없던 네가 그 넓은 뜰은 어쩌고?
마젤란을 지나 태평양으로 큰 파도 잘도 넘나들더니
갈매기 뒤쫓다 급류에 휩쓸려 이마가 찍히기도 하더니
죽은 자만이 관 속에 잠들 수 있다. 죽은 사람이 관에 든 건
몸속에 꽃씨가 비었음을 짐작하고 스스로 육신의 문을 닫은 것
가장 먼 곳으로 가는 지느러미는 죽은 뒤에 자란다
살아서 갇힌 너는 물속의 상처가 깊어 가파른 기슭을
코를 벌름거리며 심장을 욱신거리며 힘겹게 오른다
너도 세상 어딘가 흐드러지게 들러붙고 싶은 모양이다
밖으로 나가는 좁은 관을 넘지 못해
흐느적흐느적 미끄러질 것 같은
여덟 장의 꽃잎
<신생>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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