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감성조명 / 최승헌

시인 최주식 2010. 3. 31. 23:15

감성조명 / 최승헌

 

당신 몸은 어둡거나 밝은 적이 없어서 내가 은밀하게 드나들기에 좋군요

여기는 당신 몸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서 아주 편안해요

선명하다는 건 자신을 다 까발려서 내보이는 것이니까 신비함이 없지요

만약 당신이 차갑거나 뜨겁거나 한 가지 느낌으로만 내게 들어온다면

갑자기 내 몸이 차단되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 몸은 나를 부끄럽지 않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나는 당신 몸속에서 해가 뜨거나 때로는 마법의 싹처럼

나무가 쑥쑥 자라나는 것을 즐겁게 지켜봐요

우리에겐 프로토콜*같은 거래는 없었지만

당신의 황홀한 몸짓이 내 민감한 신체의 리듬을 움직이게 해요

환한 빛이 당신 몸속, 구석구석을 비추지 않아도

당신은 얼마나 당돌한 온기로 내 몸을 아늑하게 데워주는지요

당신만이 해낼 수 있는 대단한 몸의 울림이지요

 

 

* 컴퓨터 과학에서 전자기기들 사이에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규칙이나 절차를 모아놓은 통신상의 규칙과 약속.

 

 

 <시안> 201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