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아, 봄똥아 / 황상순
봄동아,
볼이 미어터지도록 너를 먹는다
어쩌면 네 몸 이리 향기로우냐!
오랜만에 팔소매 걷고 밥상 당겨앉아
밥 한 공기 금세 뚝딱 해치운다만
네가 봄이 눈 똥이 아니었다면
봄길 지나는 그냥 흔한 풀이었다면
와작와작 내게 먹히는 변은 없었을 게 아니냐
미안하다만 어쩌겠냐
다음 생엔 네가 나를 뜯어 쌈싸 먹으려므나
살찐 뱃가죽 넓게 펴 된장 바르고
한입에 툭 쳐 넣으려므나
봄의 몸을 받지 못한 나는 구린내만 가득하여
너처럼 당당하지 못하고
다른 반찬 밑에 엎드려 얼굴가리며
아마 죽은 듯 숨어 있겠지
그렇겠지? 봄동아, 봄똥아.
시집<농담> 2010. 현대시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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