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배꼽 / 황상순

시인 최주식 2010. 3. 23. 22:18

배꼽 / 황상순

 

과도로 사과의 배꼽을 파내다가

돌연 아랫배가 욱신거린다

맹장은 떼어낸 지 오래, 누가 칼을 곧추 세워

내 배꼽을 도려내는 것은 아닐까

그래, 나는 아주 오래 잊고 지냈다

꽃이 떨어진 자리 굳은 상처

배꼽은 더 이상 자라는 것이 아니어서

무럭무럭 커가는 열매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파면 팔수록 아픈 오목한 상흔일랑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주름진 뱃살 사이 홀로 깊어진 배꼽

등 뒤에 있었으면 궁금하여

이리 저리 거울에 비춰도 보았으리

흰 과육 안에는 씨를 감싸고 있는 딱딱한 밀실

통째로 다시 이를 도려내기 시작한다

정관수술을 할 때처럼 이번엔

아랫도리 씨방이 울울 아파온다

 

시집<농담> 2010. 현대시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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