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소설

2007년 대구매일신춘문에 소설 당선작 - 물의 사막 / 김정남

시인 최주식 2010. 3. 23. 22:33

2007년 대구매일신춘문에 소설 당선작

 

 

물의 사막 김정남


                                  
1


달팽이가 번식한 곳은 축양장에서 구피와 제브라다니오를 몇 마리 꺼내 샘플로 꾸며 놓은 수조였다. 처음 달팽이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개체수가 늘어나 벽면, 돌, 수초, 심지어 여과기에까지 들러붙었다. 달팽이가 처음 생길 때는 그 공간도 독립된 하나의 생태계이기 때문에 생길 것은 다 생기고 그 속에서 나름의 질서가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모두 어설픈 생물 지식이었음이 곧 판명되었다. 번식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수조에 직접 손을 넣어 놈들을 눌러 죽이기 시작했다. 점점이 박혀 있는 놈들을 꾹꾹 누를 때마다 달팽이집은 힘없이 찌그러졌다. 눌려 죽는 소리는 경쾌했다. 한 놈 한 놈 해치우면 해치울수록 그들에 대한 살의는 맹렬하게 타올랐고, 죽은 놈들을 꺼낼 틈도 없이 보이는 대로 사정없이 눌러 버렸다. 하지만 모래 틈이나 수초 사이의 달팽이 알을 없애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열대어 대백과』에서는 약품과 천적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다가,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래를 모두 퍼내서 깨끗하게 씻고 다시 물을 담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물도 한 번 갈아주지 않고 내버려 둔 것이 화근이었다. 저 수족관 속에서 군영하는 열대어들은 모두가 생물이었다. 뿌리 뽑힌 채소나 공장에서 조립되어 나온 공산품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 생물을 나름대로 관리해야만 하는 책임은 야채나 옷이나 신발을 파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만사가 다 귀찮아지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구석 자리에 끼기 시작한 푸른 이끼를 솔로 닦아냈다.
그렇다고 수조를 뒤집어엎어 청소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을 갈아주고 몇 차례 약품을 투여하자 달팽이는 슬슬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 즈음 나는 이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했다. 개업을 한 지 두 달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정기적으로 물을 갈아주고, 여과기의 필터를 청소하고, 수질을 정화시키는 약품을 넣어주기도 하고, 적당한 조도를 유지하여 수초의 생장을 돕기도 했다. 이제 축양장에는 구피, 네온테트라, 제브라다니오, 코리도라스, 블루시클리드, 수마트라, 엔젤 등 12종의 열대어를 갖추어 놓았다. 그쯤 되자 단골손님들도 조금씩 늘어가고, 나는 어느 정도 전문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때로는 거드름도 피워보며 나름대로 일을 꾸려가고 있었다.

 

2


아내는 내가 견딜 수 없다고 했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 살 난 딸아이도 나를 먼 친척 아저씨 대하듯 했다. 내가 다리를 다쳐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녀와 나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고상한 단어만 골라 쓰며 먹물 냄새를 풍기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실제로 그것은 스스로의 사회적 무능과 무기력을 위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간호사인 아내가 무엇이 아쉬워 나 같은 사람을 사귀기 시작했는지 모를 일이다. 퇴원을 하고 나서 나는 그녀와 본격적인 연애에 돌입했다. 그것은 내 생애, 단 한 번의 적극적 행위였다. 카페에서 모텔에 이르는 중간 단계가 점점 짧아질 무렵, 이미 은지는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연애할 때 그녀에게 나는 시인이었는지 모르지만 결혼 후에는 수족관에 달라붙어 있는 달팽이였다. 애초에 아내의 등이나 쳐 먹을 생각이었다면 가사와 육아만큼은 책임져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집안일은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빨래는 고사하고, 꽉 찬 휴지통이나 재활용품들도 내놓지 않았다. 뒷베란다는 거의 쓰레기 하치장이었다. 아내의 근무 시간대가 나이트인 경우, 나는 아이를 재워놓고 밤새도록 맥주를 마셨다. 밤을 새우고 지칠 대로 지쳐서 들어오는 아내가, 아침에 목격하게 되는 광경은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아빠와 발악적으로 울고 있는 딸의 모습이었다.
“내가 정말 미쳐! 이 쓰레기 같은 인간아!” 작은방에서 곯아떨어져 있는 나를 발로 차면서 아내가 말했다.
그제야 나는 부스스 눈을 떴다.
“이 굼벵이 같은 인간아! 왜 사니! 네 딸이 울잖아!” 아이를 안은 채, 아내가 경멸의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친구라도 만나라! 이 화상아!”
오로지 먹고사는 일에 정신없는 인간들과 집에 죽치고 있는 내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주식을 얘기하고 직장 상사를 욕하거나 서로의 연봉을 비교할 것이고, 아내들의 공통된 바가지에 대하여 공감의 박수를 치거나 아이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을 것이다. 서로의 아파트 평수를 비교하거나 새로 산 자동차의 성능에 대하여 떠들어 댈 것이고, 정치에 대해서는 변함없이 침을 튀길 것이고, 자신의 성생활과 변태적인 음담패설을 늘어놓을 것이다. 더러는 단란주점에서 우정의 어깨동무로 노래를 부르거나 아가씨의 젖가슴을 주무를 것이고, 더러는 2차를 갈 것이고, 길거리에서 오줌을 갈길 것이고, 어디까지 가든 결국은 모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정으로 귀환할 것이다. 이런 낡아 빠진 만남이 지겹지도 않은가. 아직 무슨 할 얘기가 남아 있단 말인가. 남아 있다면 각자의 고환 속에 또 한 번의 배출을 기다리고 있는 정액들이 있겠지. 모두가 구역질이 나는데, 대체 누구를 만나서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격려할 것인가. 모두가 병들어 있는데 환자들끼리 자신들의 환부를 자랑하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난 친구가 없어. 또 은지 때문에.”
“그러셔? 은지? 그렇게 아이를 잘 보셨어?” 아내가 비아냥거린다.
난 참을 수밖에 없다. 언제나 은지는 혼자 놀았다. 놀다가 지치면 비디오를 틀어 달라, 배고프면 밥 달라고 할 뿐, 딸아이도 아빠인 나를 포기한 지 오래다.
“미안해.”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집어치워. 미친놈. 미안하다는 말이 나와?”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이혼해 줘. 난 이 집에 살 이유가 없어.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하는 일이 없잖아. 난 쓰레기야.”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발, 난 여기 있기 싫어. 가장으로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니 하기 싫은 내가 여기 있어서 뭐해? 숨 막힌다고. 미칠 것 같아.” 말을 마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딸아이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은지는 잠이 들었는지 조용했다. 안방 문을 살며시 닫고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소파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나를 경멸과 조롱의 눈길로 바라보더니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어깨가 계속 들썩거렸다. 잠이 든 아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울음소리까지 낮게 조절하고 울었다. 저 작은 울음소리에도 본능적인 모성애가 담겨 있는 것이리라.
“이기적인 사람. 당신은 내 인생의 암덩어리야!”
나는 그런 저주로도 깨어나지 못할 만큼 병들어 있었기에 아내의 입을 막을 수 없었다.
“미안해.” 내가 웅얼거리듯 말했다.
“미친놈. 미안해?”
“그래, 미안해!” 내가 다시 힘을 주어 말했다.
은지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내는 나의 병적인 무기력에 질려 별거를 선택했다. 어찌 되었든 난 혼자가 되었고, 뛸 듯이 기뻤다. 아내는 나에게 돈도 주었다. 이게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야. 어디 가서 원룸이라도 얻어야 살지. 너 같은 쓰레기가 그대로 죽어 버릴까봐. 그래도 나중에 은지가 커서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서운할까봐 주는 거야. 그걸로 뭐라도 해봐. 그녀의 혀는 나의 몸에 채찍처럼 휘감겼다. 나를 더 모욕해 줘. 미영아.

 

3


달팽이가 번식했던 수조에 이번에는 수십 마리의 치어들이 생겼다. 얼마 전부터 배가 거의 직사각형에 가까운 암놈 구피들이 눈이 허여멀게지고 항문 근처가 검게 변하더니 일제히 까놓은 것들이다. 투명에 가까운 꼬리를 지닌 작고 연약한 치어들은 성어들의 공격을 받으며 이리저리 몸을 피하다가 모두 수초 사이나 돌과 모래 틈으로 낮게 몸을 피해 들어갔다. 목숨을 지닌 것들은 크기와 상관없이 살려는 본능을 지니고 태어난다. 이것들을 모두 잡아서 다른 수조에 키워야 한다. 그래야 성어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치어들을 작은 부화통에 넣고 키울까 생각했지만, 남아도는 수조가 하나 있었기에 그들을 모두 그쪽으로 옮기기로 했다.
치어들은 잘 잡히지 않았다. 뜰채를 가지고 수초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치어들을 건져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모래 틈으로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차피 성어와 치어를 구분하려고 한다면, 잘 잡히는 성어를 옮기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치어들과 한 시간 이상을 씨름하고 난 뒤였다. 나는 스스로의 아둔함을 자책하며 치어들만 남은 수조에 강력한 여과기를 설치했다. 수질이 좋지 않으면 쉽게 몰살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수족관 일에 취미를 붙이게 된 것이 신기했다. 『열대어 대백과』, 『알기 쉬운 물고기 질병과 대책』 등의 관련 서적을 읽고 『아쿠아저널』을 비롯한 관상어 전문잡지를 구독하면서 열대어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열대어에 대한 다양한 사진자료와 먹이, 여과기, 히터, 수중 모터, 수초, 수초 관련제, 바닥제, 수질 관련제, 에어 관련제, 질병 치료제, 장식품, 조명 등 열대어를 키우기 위한 제반 영역으로 관심을 넓혀가며 여러 가지 자료도 수집하고 있었다. 이것은 장차 인터넷에 열대어 포탈 사이트를 개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내와 별거에 들어갔던 그해 여름, 나는 수족관에서 열대어와 함께 살았다. 가게 근처에 얻어놓은 원룸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고 거의 대부분 가게에서 잠을 잤다. 밤에는 수조에 모두 불을 꺼 놓고, 열대어 관련 사이트를 찾아 인터넷을 헤매다녔고, 책상 위에 작은 스탠드를 켜 놓고 전문 서적을 읽고 공부했다. 그러나 가끔씩 은지가 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열대어는 기르는 놈이 제 딸 하나 키우지 못한다는 자책이 가슴 밑바닥을 아프게 도려냈다.
아버지, 사막과 바다에 미친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수족관을 남겨준 셈이다. 모래를 깔고 그 위에 물을 붓고 그 속에 물고기를 키우는 것은, 사막과 바다에 미친 자가 남긴 유품이다. 가족들을 모두 바닷가에 유폐시켜 버린 그는 바다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았다. 그가 살아있을 때 나는 바다를 저주했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내 운명에 독(毒)을 뿌리고 간 그를 원망했다. 네모난 수족관을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바라보는 나는, 이미 그에 의해서 길들여진 한 마리 치어였다. 은지야, 아빠는 너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네 엄마가 말하듯이 아빠는 쓰레기이고 굼벵이다. 암덩어리다. 그래서 너를 떠났다면, 은지야.
열대어에만 매달려 살던 나는, 수족관을 설치해 주고 정기적으로 관리해 주는 일을 시작했다. 수족관 설치를 의뢰하는 건수도 하루에 2건 이상은 되었다. 수족관 설치를 부탁하는 일은 날씨가 맑은 날에 더 많이 온다. 비가 오는 날에는 내리는 비만으로도 충분하기에 집 안에 물을 들여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낙원수족관 맞나요?”
여리고 탁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왔다. 전화를 걸어온 여자는 수족관 설치를 요청했다. 초가을 비가 구질구질하게 내리는 날에 수족관 설치 의뢰가 들어온 것은 의외였다. 집의 위치를 물어보니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파트였다. 그녀는 10와트짜리 등이 달린 한 자가 조금 넘는 수조에, 파란 바탕에 짙푸른 세로줄 무늬가 있는 블루시클리드 암놈을 두 마리만 키우고 싶다고 했다. 열대어에 비해 수조가 너무 크지 않느냐는 말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토바이에 물품을 가득 싣고 아파트 현관 앞에 주차했다. 거기서 작은 손수레를 꺼내 수조와 모래, 수초, 장식물 등을 옮겨 실었다. 10층에 내려 인터폰을 누르자, 문이 열려있다는 여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현관에 들어서자 그녀는 베란다 창문 앞에 놓여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거실 구석에 놓인 협탁을 가리키며 설치할 장소를 지시했다. 집안은 오랫동안 환기를 시키지 않아서인지 텁텁한 냄새로 가득했고, 빗소리마저 철저하게 차단되어 회색빛 정적이 깊게 깔려 있었다.
“보시다시피 제가 몸이 좀 불편해요. 이해하시고 잘 부탁합니다.” 그녀가 다소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붉은 체크무늬 담요를 덮고 있어 잘 알 수는 없었으나 옆에 휠체어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다리가 불편한 것 같았다.
“어떻게 저희 가게를 아셨어요?” 나는 어색함을 덜기 위해 말을 던졌다.
“114.”
입을 다문 그녀의 얼굴은 석고상처럼 창백하게 굳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서 관심을 거두고 수조를 설치하는 데 집중했다.
먼저 깨끗이 씻어온 흑사(黑砂)를 5㎝ 정도의 높이로 깔고 모래 위에 넓은 접시를 올려놓았다. 물을 부을 때 모래가 파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물은 미리 받아서 하루 정도 묵혀서 사용해야 하지만, 수돗물에 염소 성분을 정화시켜 주는 약품을 투여하여 사용했다. 인공수초를 심고 돌과 유목 등의 장식품들을 구상에 따라 배치했다. 그리고 미세한 부유물들을 모두 가라앉히기 위해서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는 수조를 설치하는 과정을 힐끔힐끔 쳐다보았을 뿐, 베란다 너머로 내리는 초가을 비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처음 수족관을 설치하는 사람들은 들뜬 마음에 이것저것 묻게 마련인데, 그녀는 작은 감정의 움직임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어두운 수조 속에 홀로 가라앉아 있는 것이다. 비 내리는 날, 그녀의 거실은 커다란 수조같이 느껴졌다.
마침내 여과기를 유리 벽면에 부착하고 플러그를 꽂았다. 작은 기포들이 수조 안으로 일제히 퍼져나갔다. 이제 열대어가 살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이 마련되었다. 나는 열대어를 담아온 비닐 봉투를 그대로 수조 위에 띄웠다.
“왜 물고기를 풀어놓지 않으시죠?” 창밖을 내다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리더니 기습적으로 말을 던졌다.
“봉투 속의 온도와 수조 속의 온도를 일정하게 맞추기 위해서죠. 바로 열대어를 수조 속에 넣었을 때, 수온 차이로 인해서 녀석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거든요.” 나는 전문가의 자부심을 드러내듯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녀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가 어머니의 몸 밖으로 밀려나올 때 얼마나 춥겠습니까? 또 다른 세계로 내던져질 때 말입니다. 물고기도 똑같죠.”
나는 필요 없는 말까지 늘어놓았음을 후회했다.
“섬세하신 분이군요.”
이제 봉지를 개봉하여 블루시클리드를 풀어놓았다. 블루시클리드는 사나운 물고기이기 때문에 같은 수조에서 많은 수를 키울 수 없다. 워낙 영역 싸움이 치열해서 서로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공격적 성향이 가장 왕성한 성어 두 마리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마지막으로 조명을 환하게 밝히자 수중 세계가 투명하게 펼쳐졌다. 블루시클리드 두 마리가 수초 속을 이리저리 유영했다. 수조 설치를 다 마치고 조명을 켤 때마다, 나는 내가 창조한 세계의 모습에 대하여 감탄하곤 했다. 어둠에 빛을 던지듯,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희열감.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성서의 문장은, 이때 나를 보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이제 다 됐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연락 주세요.” 현관으로 걸어 나가면서 내가 말했다.
그녀는 휠체어에 몸을 옮겨 실으며 현관 쪽으로 움직였다.
“얼마 드리면 될까요?”
“사실, 출장비에다가 설치비까지 받아야 하는데, 수조와 재료비만 받겠습니다.”
돈은 이미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고, 나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해당되는 금액만큼을 세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아파트를 빠져나오면서 생각했다. 매일같이 치열한 영역 싸움을 벌이는 블루시클리드를 바라볼 그녀의 모습을. 그녀는 거기서 무엇을 느낄까? 차라리 거대한 수조 같은 아파트 거실에서, 또 다른 인공 낙원을 바라보며 무슨 감정에 휩싸일까? 나는 그녀가 두 마리의 블루시클리드 중에서 한 마리에 감정을 이입한 후, 다른 한 마리를 죽이는 데 동참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4


경제적인 측면에서 수족관은 잘 운영되고 있었다. 구피나 네온테트라 같은 대중적인 열대어는 이틀에 한 번씩 공급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잘 나갔다. 단골 중에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마니아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오히려 나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과 열대어에 대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창업 가이드를 해 주기도 했다. 영업이 잘 되고 일도 제법 손에 익어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어지자, 은지가 가끔씩 보고 싶었다. 다시 가정으로 스며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된다면, 과연 나는 한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아버지가 내 운명에 뿌린 독 때문이다. 오로지 그것 때문이다. 나는 내 기질이 아버지에게서 이어받은 운명적 부채라고 떠넘기며 스스로 변명하고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 그는 언제나 『실크로드』를 보고 있다. 일본 NHK와 중국 CCTV가 10년에 걸쳐 제작한 다큐멘터리인 실크로드가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것은 1984년의 일이다. 기타로(喜多郞)의 Caravansary를 배경음악으로 중앙아시아의 뜨거운 사막을 건너는 캐러밴과 폐허 속에서도 천고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고대문명, 그리고 거친 모래 바람 속에서도 세월이 전해준 삶의 방식을 지켜 나가는 소수민족의 모습. 당시 국민학교 고학년이었던 나에게 그 다큐멘터리의 영상이 전해준 느낌은 분명 고독과 장엄이었다. 그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이따금씩 머리 위로 뿌연 담배 연기만이 올라갈 뿐, 아버지는 거의 굳어 있었다.
‘아버지, 가게에 나가세요. 신발 가게는 엄마한테만 맡겨 놓고 왜 나가지 않으세요?’
내가 아무리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고 할지라도 아버지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캐러밴과 함께 타클라마칸을 건너고 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가 끝나면, 아버지는 피우던 담배를 꺼버리고, 베개를 모로 세워 낮잠을 잤다.
‘아버지, 왜 매일 집에만 계세요? 네? 엄마만 고생하잖아요.’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났다. 다음에 그가 무엇을 할지는 뻔하다. 그는 바닷가로 갈 것이다. 그는 사막에서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꾸부정한 어깨에 낚시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는 그의 모습은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지루하고 언제나 무표정했다. 아버지는 갔다 온다는 말도 없이 대문을 쾅 닫고 사라졌다.
집에 있기가 무료해진 나는 어머니가 있는 가게에 나갔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같은 말을 했다.
“네 아버지 또 나갔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 지기 전에 방파제에 가서 아버지 데려와라. 네 아버지 물귀신 되겠다.”
“이젠 지겨워요. 엄마는 왜 같은 말만 하세요? 아버지는 왜 늘 같은 곳에만 가세요? 이젠 내가 미칠 것 같아요.”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사막과 바다를 오가며 살았다. 그에게 세상은 사막이면서 바다였다. 방파제에 나가면, 아버지는 릴낚시에 빠져 있었다. 낚싯대가 부러질 정도로 휘어지는 모습이 연출될 때마다 아버지는 고기를 낚아 올렸다. 살림망에는 우럭과 돔 등이 가득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오시래요.”
“그래, 조금만 있다가.”
“아버지! 매일 물고기만 먹고 살아요?”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다.
“매일 어머니가 매운탕을 끓여야 하잖아요. 난 이제 냄새 맡기도 싫어요.”
매일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말들. 나는 어둠 속에서도 일그러지는 아버지의 표정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낚싯대를 접었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나는 아버지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아버지의 손에 내 작은 손을 끼워 넣었다.

 

5


시간은 어느덧 초겨울로 접어들었다. 나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서 수조에 히터를 설치하고 있었다. 열대어들은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기온이 점점 내려가는 초겨울에는 몰살할 수도 있다. 때문에 히터를 수족관 전용 자동 온도 조절기와 연결할 계획이었다. 오후에 몇 차례 출장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았지만, 다음날로 약속 시간을 잡았다.
“수족관 여과기가 작동하지 않아요. 오시는 길에 구피 세 마리만 갖다 주실래요?”
10층에 사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잠시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저녁 8시경에 방문할 것을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 주기로 한 것이다. 다만 이상한 것은 구피를 주문했다는 것이다. 왜 블루시클리드를 키우는 수조에서 구피를 합사하려고 하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힘이 약한 구피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오토바이를 몰고 여자의 집으로 향했다. 차가운 초겨울의 대기를 유선형으로 헤치며 질주했다. 수조 속의 물고기가 끝에서 끝까지 헤엄쳐 간다는 것은 자신에게 맡겨진 전 생애의 공간을 움직인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돈다고 해도 그것은 수조 속의 물고기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문 열렸어요. 몇 달 전에 들었던 같은 목소리였다. 그녀는 언제나 미리 문을 열어 놓았다. 남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불편한 몸을 드러내며 문을 열어 주고 싶지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처음 왔던 날과 같이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석고상 같은 흰 얼굴은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블루시클리드는 건강해 보였다. 푸른색 줄무늬는 더욱 선명해졌고 눈동자는 또렷했으며 지느러미는 활발하게 움직였다. 다만,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줄기차게 쫓아다니고 있었다. 조금 잠잠하다 싶으면 다시 와서 공격하는 식이었다. 쫓겨다니는 놈은 결국 스트레스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나는 작동되지 않는다는 여과기를 벽면에서 떼어냈다.
“보이죠? 여기 밑에 보시면 뚜껑을 열 수 있거든요? 바로 이 속에 스펀지가 들어있어요. 여과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이 스펀지에 이물질이 많이 끼었기 때문이죠. 손으로 살살 비벼 빨아서 다시 끼워주면 됩니다.” 나는 전문가처럼 능숙한 솜씨로 한 마디도 막히지 않고 말했다.
“네에…….”
그녀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스펀지를 빨아서 다시 끼우고 전원을 켜니 물이 뿜어져 나오고 동시에 수많은 기포들이 퍼져 나갔다.
“이제 다 됐습니다. 그리고 구피는 여기 담아왔습니다.”
나는 구피가 담긴 비닐 봉투를 수족관 앞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내 얼굴을 멍한 시선으로 살피더니 갑자기 덮고 있던 담요 속에서 팔을 꺼내 올렸다. 족발. 그녀의 손은 잘 구운 족발처럼 뭉툭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렇게 흰 얼굴을 가진 여자가 족발 같은 두 손을 가졌다니. 화상을 입은 것이 틀림없었다.
“구, 구피는 브, 블루시클리드와 함께 키우지 못해요.” 나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는 흔들의자에서 휠체어로 몸을 옮겼다. 아주 능숙한 몸동작이었다. 손과 팔이 저렇다면 몸속도 다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순간 바짝 쭈그러든 그녀의 음부를 떠올렸다. 볼록한 두덩의 털들도 모두 없어졌을 거다. 화전(火田)처럼 검게 타들어간 음부는 음순끼리 들러붙어 열리지 않을 거다. 나는 이런 것까지 연이어 떠올렸다.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식탁 앞으로 가서 그 위에 있던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날처럼 현관문은 열어놓았지만, 돈은 미리 꺼내 놓지 못했던 것이다.
“됐습니다. 그냥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럼.”
나는 서둘러 그녀의 아파트를 빠져나가고 싶었다.
“당신, 내가 징그럽죠? 그래서 그러는 거죠?” 그녀가 잭나이프를 들이대듯 섬뜩하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저 사은품이라고 새, 생각하세요. 하하.” 웃음소리가 오히려 어색했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아닙니다.”
순간, 그녀는 조소 어린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서 그러니 음료수라도 하고 가시죠.” 하며 그녀는 냉장고 앞으로 다가섰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식탁 의자에 앉았다. 냉장고의 음료수들은 모두 마개가 없었다. 그녀는 열려져 있는 병들 중에서 델몬트 오렌지를 골랐다. 뭉툭한 두 팔로 컵을 잡아 식탁에 내려놓고, 다시 그 팔로 주스를 따르기 시작했다. 손놀림은 오랜 반복으로 숙달되어 있었다. 그녀는 두 잔의 주스를 따라 나에게 한 잔을 건네고 나머지 한 잔은 자신의 앞으로 가져갔다. 양념한 족발 같은 팔 끝으로 식탁 유리 위의 컵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모습을 나는 묵연히 바라보았다.
“흉하죠?” 그녀가 또 같은 말을 했다.
“왜 자꾸 그런 말을 하시죠? 아닙니다.” 나는 억지스레 힘을 주어 말했다.
여자가 잠깐 쿡, 하고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모두 알고 있는 듯한 조소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타인과 관계의 평형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른 몸뚱이가 이 모양인데, 왜 얼굴만은 멀쩡하냐고 묻고 싶으시죠?”
“이제, 그만 하시죠. 전 관심 없습니다.” 나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러실 테죠. 당신은 그냥 수족관 때문에 온 사람이니까.”
“이제, 정말 가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밑구녕은 바짝 말라 거미줄을 칠 지경이야.” 그녀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하자 그녀는 허겁지겁 휠체어를 밀며 따라왔다.
“구피는 블루시클리드의 먹이가 아닙니다.” 현관문이 닫히기 전에 내가 말했다.
그녀가 뭐라고 중얼거렸으나 문이 닫히는 바람에 들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그녀에게 다시 전화가 오더라도 출장을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우주의 한 끝에서 한 끝으로 달려나가듯 질주했다. 움직여도 움직여도 언제나 그 자리인 지구라는 거대한 수조 속에서 그 작디 작은 한 점이 전생애의 속도인 것처럼.

 

6


아버지는 사막을 생각했다. 모래 바람이 부는 황량한 중앙아시아의 사막을 바라보다가 갈증에 겨워 바다에 나갔다. 도시에서의 좌절은 그를 바닷가의 소읍으로 처박았고, 그는 이곳에서 집과 바다가 수족관의 양쪽 끝인 것처럼 죽을 때까지 그 길을 왕복했다. 그 길이 다시 집으로 순환되지 않고 직선으로 뻗을 때, 그것은 죽음이 될 것이다.
해질 무렵, 바다가 짙은 청색으로 변해갈 때, 아버지는 늘 방파제에 검은 실루엣으로 서 있었다. 언제나 그는 내가 찾아갈 때까지 오후 내내 바닷가에 있었다.
“오늘은 어황이 좋지 않아.” 낚시 가방을 둘러메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늘 호젓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땀이 날 정도로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아버지, 문제집 좀 사 주세요.”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아, 또 시작된다. 최희준의 「하숙생」. 언제나 집으로 갈 때마다 부르는 아버지의 애창곡.
“아이들이 다 본단 말예요. 『13년간 총정리』라는 책이에요.”
그는 벌써 방파제에서 소주를 깠음에 틀림없었다. 갓 잡혀 올라온 광어 같은 것을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회를 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을 거였다.
“아버지, 그 책 못 보면 연합고사 망쳐요.” 나는 거의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아들아. 바다도 사막이야. 마실 수 있는 물 한 모금 없어.” 그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좀 그만 하세요. 아버지.”
난 그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었다. 아버지도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네 아버지처럼 배를 타든지, 아니면 수협에 다니는 사람들처럼 아침이면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실크로드를 본다. 그것도 끝나면 성룡이나 이소룡이 나오는 무협 영화를 본다. 정오의 해도 지쳐 뉘엿거릴 때,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자리에 눕는다. 그는 사막을 꿈꾼다. 그러다 물 냄새를 맡은 사막의 낙타처럼 시퍼런 바다에 나가 고기를 낚는다. 이런 그에게 그 어떤 기대도 필요 없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내가 고입 연합고사를 치르던 날, 방파제에서 발을 헛디뎌 물에 빠졌다. 해경의 수색 끝에 발견된 아버지는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있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어머니는 거의 병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뭐라고 했어. 그 양반 물귀신 될 거라고 했지?”
신발 가게에는 고무독(毒)이 올라 손이 쩍쩍 갈라진 어머니가 있다. 그녀는 사시사철 어두컴컴한 신발 가게에서 살았다. 그녀도 사막 같은 집과 햇볕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신발 가게를 수조의 양쪽 끝으로 생각하며 반평생을 오갔다. 그러던 그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것은 내가 군에서 제대한 그해 가을이었다. 피를 토하는 투병의 기간은 두 달을 넘지 못했다. 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그녀는 나에게 힘겨운 몇 마디의 말을 남겼다.
“신발 가게는 누이한테 잘 얘기해 뒀으니, 가게든 신발이든 다 처분해서 누이 통장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써라.” 가쁜 숨을 내쉬며 어머니가 말했다.
“왜 그런 얘기하고 그래?” 나는 복수(腹水)로 가득 찬 그녀의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녀의 배는 배꼽이 뒤집힐 만큼 부풀어 올랐다. 마른 장작 같은 그녀의 몸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물이 생기는 것일까. 그녀는 이틀에 한 번씩 굵은 주사 바늘을 꽂고 1리터씩 복수를 빼냈다.
“참을 수가 없어. 왜 이렇게 배가 부르다니. 잘 좀 문질러 봐.” 그녀는 계속 신음 소리를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 힘들면 말하지 마.” 나는 메마른 어머니의 입술에 젖은 거즈를 대 주며 말했다.
“미안하다. 대학 졸업하고, 장가가는 것도 다 봐야 하는데.”
나는 연방 그녀의 배를 문지르며, 고개를 돌려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네 아버지 욕하지 마라. 그이도 그이 몫의 고통이 있었으려니 싶다. 난 인생의 모든 의욕을 상실한 네 아버지를 그저 묵묵히 지켜주고 싶었던 거다. 너에겐 그저 무기력한 가장으로 보였을 테지만, 도시에 있었을 땐 아버지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신발 장사도 왜 하게 됐는 줄 아니. 신발은 썩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아버지에게 썩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라도 팔 수 있는 것, 그래서 망하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알았어. 아버지 얘긴 그만해.”
“네 아버지는 지독하게도 순진한 사람이었어.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
계속해서 피를 토하던 최후의 몇 시간, 나는 어머니가 빨리 떠나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서울로 시집간 누이의 손을 잡은 채 차갑게 굳었다.
어머니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공원묘지 아버지 곁으로 가 누웠다. 아버지는 죽어서도 시퍼런 바닷물에 낚시를 던질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말없이 바라볼 것이다. 그렇게 두 노인네는 늙지도 않는 시간 속에 계속 머물 것이다.

 

7


아내에게 전화가 온 것은 12월 첫날이었다.
“나예요.”
아내의 목소리에서 단호하면서도 왠지 모를 끈끈함이 느껴졌다. 은지의 안부를 물었으나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딸의 안부를 알려줘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은 잘 다니고?”
아내는 은지를 장모님에게 맡기고 병원에 다니고 있을 거였다.
“그래요. 당신은?”
“그냥, 좀 바빠.”
“가게는?”
서술어가 모두 생략된 말들. 나는 불쾌했지만 그런 것에 감정을 표시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은지 양육비는 보내도 될 만큼 벌어.”
나의 대답에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 한번 은지 데리고 와.”
아내는 온다 안 온다 말도 없이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해가 바뀌면 은지는 여섯 살이 되겠지. 무슨 이유에선지 아내가 은지와 함께 가게에 놀러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지에게 예쁜 열대어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살았을 때, 은지에게 아빠는 풀린 눈으로 캔 맥주나 홀짝거리던 모습이었으니까.
이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으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난번엔 죄송했어요.” 10층 여자의 가늘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요?” 나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물고기들이 다 죽었어요.”
“그러게. 그게 대체 합사가 가능합니까? 블루시클리드 두 마리와 구피 세 마리라. 애초부터 죽이려고 생각한 거 아닙니까?” 나는 심하다 싶게 쏘아붙였고, 또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
“다른 수족관에 연락해 보세요.”
나는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놓으려 했다. 바로 그때,
“잠시만요. 그때는 잘 몰랐어요. 여러 마리를 키우고 싶어요.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물고기로 부탁드릴게요.” 여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장애인이어서 출장비까지 받지 않았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거기에 다시 갈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여자의 목소리가 마음의 한구석을 잡아끌었다.
“그럼, 내 마음대로 골라서 가져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출장비도 받을 거고.”
“당연히 그러셔야죠.” 여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환해졌다.
가게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여자에게 어떤 물고기를 가져갈 것인가 잠시 생각했다. 구피 두 마리, 네온테트라 세 마리, 제브라다니오 세 마리, 코리도라스 두 마리, 이렇게 담기로 했다. 가장 대중적으로 키우는 열대어이고 서로 합사해도 무리가 없는 어종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한참만에야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나를 맞았다.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족관은 불이 꺼져 있었고 여과기는 작동을 멈춘 채였다. 그녀의 말대로 물고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영역 싸움을 하던 블루시클리드는 새로운 먹잇감인 구피가 들어오자 신나게 그들을 공격했을 것이고, 영역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서로를 물어뜯었을 것이며, 최후의 한 마리도 ‘곰팡이병’이나 ‘지느러미 썩음병’에 의해서 죽었을 거였다. 먹다 남은 구피와 죽은 블루시클리드가 흐물흐물 녹는 동안 물이 심하게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여과기도 스펀지에 이물질이 많이 껴서 작동을 멈추게 된다. 상대를 죽인 것이 결국 자신의 죽음을 앞당긴 셈이 된 것이다. 그녀가 일부러 물고기를 죽이지 않았다면, 자연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캐는 형사처럼, 지난날 수족관에서 생긴 일들을 재구해 보았다.
“수조를 모두 닦아야겠어요.” 수조 벽면에 지저분하게 낀 이끼를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미안한 표정만 지었다. 물을 바가지로 퍼내고 수조를 욕실로 옮겼다. 쌀을 이는 것처럼 흑사를 씻고 수조 벽면에 들러붙은 이끼를 닦아냈다. 수조를 제자리로 옮겨놓고 인공수초를 심고 장식품들을 배치한 후, 다시 물을 채웠다. 그리고 열대어는 봉지 그대로 물 위에 띄웠다.
“개운하죠?”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지르며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엷게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잠시 후, 열대어들을 수조 속에 풀어놓고 여과기를 작동시켰다. 점박이 지느러미를 우아하게 흔들며 헤엄치는 구피, 푸른색의 옆줄을 뽐내며 군영하는 네온테트라, 날렵한 몸매의 제브라다니오, 청소부라는 별명대로 열심히 바닥을 훑으며 다니는 코리도라스. 조화롭게 만들어진 수조 속의 세상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웠다.
“예쁘네요.” 여자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출장비와 설치비를 모두 받아야 했기에 만만치 않은 가격을 불렀다. 그래야 그녀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미리 꺼내 놓았을 돈을, 그녀는 지갑에서 손수 꺼내 주었다. 오히려 그 모습이 당당해 보기 좋았다. 내가 현관으로 나가려 하자 그녀가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또 뭔가 싶어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받아주세요.”라고 말하며 그녀는 현관 옆에 있는 작은방 문을 열었다.
방에는 수십 개의 화분들이 가득 차 있어, 마치 거리에 있는 화원을 실내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베란다를 확장한 방은 넓은 통유리를 통해 자연채광이 잘 되도록 꾸며져 있었다. 어떻게 아파트에 이런 공간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방에 들어가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노랗고 빨간 선인장이 심어져 있는 앙증맞은 화분들, 다양한 관엽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화분들, 그리고 풍란이 붙어 있는 숯부작까지.
그녀가 만든 화분은 시(市)의 장애인복지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가져간다고 했다.
“하나, 고르세요. 고생 많이 하셨는데.” 그녀가 목소리를 돋우어 말했다.
나는 풍란 뿌리가 멋스럽게 붙어있는 숯부작을 골랐다. 둥근 나무수반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현관을 나오면서 나는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숯부작을 제 가게에 놓고 팔고 싶은데, 어떠세요?”
“그래요?” 그녀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다음달에 올게요. 여러 개 사갈 테니 싸게 주세요. 이건 장사에요, 장사.” 나는 짐짓 너스레를 떨어보았다.
“그렇게 하세요. 물량을 맞추려면 힘들겠네요.” 그녀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화상 입은 손을 휘휘 저으며 기뻐했다.
“올 때마다 수족관도 봐 드리죠.”
부작을 손에 들고 대문을 나서자 그녀가 짧게 목례를 했다.
나는 오토바이를 몰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도로를 질주했다. 이미 길은 가게로 돌아가는 쪽이 아니었다. 나는 훅훅 밀려드는 차가운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아내가 은지와 함께, 빨리 가게에 구경을 왔으면 좋겠다. 은지에게 하나하나 물고기 이름을 알려주며, 이게 다 아빠가 기르는 거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나는 왠지 모를 기분에 들떠 스로틀 레버를 힘껏 잡아당겼다. 매운 모래 바람이 날리는 뜨거운 사막을 지루하게 걷던 낙타가 마침내 물 냄새를 맡았을 때의 기분이랄까. 시트 밑에 실은 숯부작이 날름날름 가랑이 사이를 간질이는 것 같았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14편이었다. 통독하고나니 작품마다의 잘잘못에 대한 분별이 뚜렷해졌다. 중년여성의 일탈을 그리고 있는 '디지로그 가족'(임예현)은 그 찬찬한 일상의 소묘벽이 그럴 듯하나, 두 개의 시각을 동원한 이른바 다중시점은 플롯짜기의 허물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취조실에서 피심문자가 일방적으로 지껄이는 고백투 문체의 '웰빙'(송영인)은 세태풍자라는 점에서, 또 잡다한 의학적 지식을 수더분하게 들려준다는 점에서도 이채롭다. 그러나 우등고속버스에서 만난 레지던트 2년차인 여자가 죽음에 이르는 경과도, 그후 화자의 엽기적 행각에서도 그 작위성이 지나치게 두드러지고 말았다.
'메'(정석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소외의 길을 밟고 있는지를 추적하고 있는데, 모진 가난과 지독한 투병, 성적 학대와 돌발적 화재 등등의 거창한 ‘이야기 조작 강박증’이 너무 우렁차서 소설적 실감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
'바다로 떠난 시인'(이홍사)은 제도권 밖에서 떠도는 한 시인의 기행(奇行)에 대한 옹호가 재미있고, 거의 농담처럼 수월하게 살아가는 시인의 친구들의 생활세계도 제법 구뜰하나, 인정가화식의 이야기 한자락을 풀어놓기에 급급하고 만 것은 날림의 문장 및 문맥얽기에다 작가의식의 부재 탓일 게 분명하다.
'물의 사막'(김정남)은 수족관의 매매·설치·관리로 생계를 이어가는 화자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그의 가족사까지 펼쳐보이는, 욕심이 사나운 작품이다. 소재를 버릴 줄 모르는 만큼 여러 인물과 사건들이 도식적이고 더러는 진부한 대목도 보인다. 그러나 정신적·육체적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상당한 정도로 온당한데다가 차갑고 뜨거운 양가감정까지 조명하고 있어서 소설적 양감이 풍요롭다.
더욱이나 요란스런 비유와 엉뚱한 과장을 철두철미하게 자제한 진솔한 서술체 문투와 멋부리지 않은 대화체가 다소 낭만적인 소설적 구도에 안정감을 실어나르고 있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거듭하기 바란다.

오생근(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김원우(소설가·계명대 교수)

 

당선소감


세상은 말 잘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말의 성찬에 질식할 것 같은 이 시대에 내가 그 판에 끼어든다는 게 과연 유익한 일일까. 더욱이 그 판은 나의 동참을 환영할 것 같지도 않다. 말 한 마디 보탰다고 누가 나의 존재감을 느낄 것인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결코 작지 않은 일이다. 소설이라는 것을 끼적거린 지 만 15년이다. 이런 둔재는 차라리 한심하다고 해야 온당할 것이다. 사실 나는 몇 년 전 문단 진입의 행운을 얻어, 그 말석에 앉아 비평이라는 이름의 글들을 써왔다.
그러나 외곽의 소리는 중심에 잘 전해지지 않았고 언제나 나는 환멸을 딛고 서 있었다. 지금 또 나에게 찾아온 새로운 기회는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시작부터 헤픈 웃음 흘리지 않겠다. 영원한 무명으로 버려질 운명에 처해 있던 나에게 구원의 빛을 보내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족들. 하늘 높은 곳에서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부모님, 그와 같은 사랑으로 나를 길러준 피붙이들―玉 愛 俊 美 實, 가슴 저미도록 아프고 소중한 내 식구―香 賢洙, 그리고 大邱의 모든 가족들. 모든 이들에게 받기만 하는 사랑이 언제나 부끄럽고 괴롭다. 여러 은사님들, 그 어떤 인사도 올리지 못하겠나이다. 말 못하는 제자의 냉가슴을 헤아려 주시길.
江陵. 세월의 무덤. 권태와 적요가 이상한 가역반응을 일으키는 이곳에서 기억은 휘발되고 영혼의 칼날은 한없이 무뎌진다. 여기서 스스로의 정신을 날카롭게 벼린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청춘의 오욕을 가슴에 새기며 자신을 보다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 자학에 가까운 노력이 필요할지라도, 사금처럼 빛나는 순도 높은 서사의 結晶을 얻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한때 잔재주로 반짝하는 소설이 아니라 오래 두고두고 읽히는 작품 쓰겠다.

 

 

 

                                                         김정남


 1970년 서울 출생
한양대대학원 국문과 석·박사과정
'현대문학'(2002) 평론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