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너무 멀리 와 있네 / 임영조

시인 최주식 2010. 4. 14. 21:14

너무 멀리 와 있네 / 임영조

 
어딘가에 떨어뜨린 단추처럼
어딘가에 깜박 놓고 온 우산처럼
도무지 기억이 먼 유실물 하나
찾지 못해 몸보다 마음 바쁜 날
우연히 노들나루 지나다 보네
다잡아도 놓치는 게 세월이라고
절레절레 연둣빛 바람 터는 봄 버들
그 머리채 끌고 가는 강물을 보네
저 도도하게 흐르는 푸른 물살도
갈수록 느는 것 삶에 지친 겹주름
볕에 보면 물비늘로 반짝이는 책
낙장없이 펼쳐지는 大藏經이네
어느 한 대목만 읽어도 아하!
내 생의 유실물이 모두 보이고
어영부영 지나온 산과 들이 보이네
내 마음속 빈터에 몰래 심어둔
홀씨 하나 싹트는지 궁금한 봄날
거룻배 노 저어가 찾고 싶은 날
오던 길 새삼 뒤돌아보면 이런!
나는 너무 멀리 와 있네

시집 <시인의 모자> 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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