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속의 잠 / 길상호
한 바가지 남은 쌀을 쏟아놓고
쌀벌레 골라내는 어머니, 제발
저의 꿈틀대는 몸은 집어내지 마세요
시간을 까먹고 또 파먹어도
푹 꺼져버린 배를 채울 수 없어
쌀로 만든 집 필요했던 거에요
아직 날개 돋지도 않았는데
이제 겨우 단꿈 씹고 있는데
어머니 시커먼 손가락이 닿으면
서툴게 지은 집 깨지고 말아요
눅눅한 장마 지나고 나면
퇴회된 등판 날갯죽지가
삐걱삐걱 다시 움직일 것 같아요
넌 환상의 방에 누워있는 거란다,
어머니의 말은 듣기 싫어요
깨어나 날개 없이 처박히더라도
그냥 여기서 젖은 몸 말리게
비 내리는 세상 불러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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