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참마 / 최승헌

시인 최주식 2010. 4. 30. 22:11

참마 / 최승헌

 

  양평 절에서 마 몇 뿌리를 얻어왔다 아침에 밭에서 캔 참마라며 비닐봉지를 건네주는데 작고 못생긴데다 흠집이 많았다 참마라면 모양도 매끈하고 깨끗할 줄 알았는데 썩은 고구마처럼 흠집투성이다 선뜻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몸에 좋다며 갈아먹으라는 스님의 정성에 받아와 며칠째 부엌바닥에 방치했더니 비닐봉지 안에서 뿌옇게 습기가 찼다 이것도 몸값을 하느라고 무시를 당하면 화병이 나는 모양이다 할 수 없이 마른 흙을 털어내고 껍질을 벗겼더니 하얗고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난다 붙어있던 흠집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마가 훤한 몸매로 얌전히 누워있다 겨우 겉옷 하나 벗었을 뿐인데 그 약한 속살이 깊은 향기를 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자신을 숙성시키기 위해 땅속 깊숙이 박혀, 터지고 갈라지면서 여물어온 상처들이 잠시 몸을 드러내 나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래도 내가 마보다는 한수 아래인 것 같다

 

 <현대시학> 2010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