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꽃 씨앗 / 전정아
집 앞 화단, 까만 분꽃 씨앗 보인다. 어디든 뛰어내릴 듯한 기세, 바늘에 콕 찔려도 꿈쩍하지 않을 거 같다. 그 모습, 어린 시절 남동생 안하무인으로 지켜주던 사타구니 속, 거시기 두 쪽 같다. 남녀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나, 그 잘난 두 쪽 때문에 뺏긴 게 많다. 동생 머리통 하나만큼 키가 컸던 것도 죄, 아침마다 갓 삶은 계란 한 개가 동생 입으로 들어갔다. 생선이라도 굽는 날이면 몸통은 언제나 동생 몫이었다. 젓가락으로 고등어 대가리를 뒤지며, 두 쪽 없는 내 몸 무척 원망했다. 난 누가 뭐래도 5분 먼저 세상에 나온 누나였다. 그런데 그 녀석 다른 거 다 제쳐두자고 하자. 엄마 젖 뺏기고, 분유와 미음으로 아기 시절을 끝마쳤던 내게, 아직도 누님이라고 안 한다. 야, 너란 호칭으로 속을 뒤집어 놓는다.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저것!
분꽃 씨 두 알, 엄지와 검지 사이 꼭 끼운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힘껏 비벼댄다.
동생 눈물 쏙쏙 빠진다.
시집 <오렌지 나무에 오르다>2010.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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