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관계 혹은 사랑 / 이재무

시인 최주식 2010. 7. 28. 22:47

관계 혹은 사랑 / 이재무

 

못 박는다 벽은 한사코, 들어오는

막무가내의 순애보 밀어내고 튕겨낸다

그러나 망치 잡은 두툼한 손의 고집

벽은 끝내 막을 수 없다

일자무식하게 꽝꽝 박을 때마다 진저리치는

벽, 아주 인색하게 몸 열어 관계 받아들인다

단단한 살 헤집어 가까스로 뿔내린 자의

저 단호하고 득의에 찬 표정을 보라

벽은 못 품고 살아간다

들어올 때 아퍼서 울던 울음 뒤

생긴 상처 아물면서

못은 비로소 벽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주 먼 훗날 못은 벽 떠날 날 올지 모른다

그날의 벽은 이제 제 안에 깊숙이 박힌

사랑 내주지 않으려 끙끙 앓으며

또 한 번 검붉은 녹물의 설움 질질 짜낼 것이다